시원스쿨 토익 실전 모의고사 3회분 - 시험 직전 QR 무료해설강의로 마무리하는 토익 실전 모의고사
시원스쿨 어학연구소 지음 / 시원스쿨LAB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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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기출문제다. 모든 시험의 대비는 결국 기출문제로 귀결된다. 철저하게 기출문제를 이해하고 연습하고 숙지함으로써, 시험장에서 능숙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모든 시험 준비의 핵심적인 목표다. 토익도 다를 이유가 없다. 다만 토익은 다른게 있다. 문제집을 가지고 나올 수 없다는 것. 시험이 끝나면 시험지를 회수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시험이 끝나면 총평강의가 업데이트될 정도로 복원이 잘 이루어지고 있고, 최신 트렌드에 맞춘 질좋은 모의고사 문제집들도 시중에 나와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처음 만나본 '토익 실전 모의고사'다.그 동안은 큰 점수가 필요하지 않았고 적정 커트라인만 넘기면 되었기 때문에 크게 열심히 준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빨간책'이나 '파란책'을 시간 되는대로 풀어보고 시험장에 들어가는 것이 과거의 토익대비 패턴이었다. 그러다 만료된 토익 점수를 갱신하기 위해 지난 12월에 큰 준비 없이 토익을 보았는데 이게 웬걸. 제대로 얻어맞았다. 신유형으로 새로워진 토익은 너무나 생소했다. 까막귀, 까막눈이 된 기분으로 시험을 마치고 돌아왔다. 이번엔 제대로 준비해야겠고 마음을 다잡고 두 권의 책을 골랐다. <시원스쿨 토익 750+>와 <시원스쿨 토익 실전 모의고사 3회분>이다. '기본서+모의고사'이 조합이다. 그렇게 지난 1월 19일 토익을 봤다. 점수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느낌이 좋다. 배운 내용을 실전에 적용해가며 기분좋게 문제를 풀어나갔기 때문이다. 단기간에 안정적인 점수를 확보하기 위한, 효율적인 전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시원스쿨 토익 실전모의고사 3회분>의 장점은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실전'에 가까운 교재다. 실전 토익문제와 똑같은 형태의 문제집이다. 문제집의 크기와 문제의 구성은 당연하거니와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문제들을 담고 있다. 덕분에 12월 토익에서는 문제를 풀면서 낯설고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반면 이번 1월 토익에서는 익숙한 지문과 문제들을 만나며 한결 능숙하게 쭉쭉 풀어나갈 수 있었다. 둘째, 이용하기 편리하다. 교재는 3회분+답안의 4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부마다 표지에 QR코드가 그려져 있다. 이를통해 스마트폰만 있으면 즉시 MP3를 다운받을 수 있고 정답을 확인할 수 있으며 강의를 수강할 수 있다. 홈페이지에 찾아가서, 다시 해당 교재의 페이지로 넘어가고, MP3를 다운받아 이용하는 방법에 비해서 훨씬 간편하고 편리했다. 셋째, 강의를 활용할 수 있다. 앞서의 QR코드를 따라 들어가면 최서아강사의 강의를 수강할 수 있다. 특정 문제만 골라서 해설해주는 것이 아니다. 모든 문제를 다 풀어준다. 파트별 접근법도 따로 짚어준다. 시험장에서의 실전 풀이법도 알려준다. 시험 운영을 위한 전반적인 전략도 빠트리지 않는다. 그냥 정규강의 같다. 오리엔테이션 강의에서 최서아강사가 강의를 무료로 제공하는 선택이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고 이야기했는데 정말 그랬을 것 같다. 무료강의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을만큼 풍부하고 질좋은 강의였다. 개인적으로 문제도 문제지만, 함께 제공되는 양질의 강의가 이 책의 가장 강력한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서아강사는 토익 경험이 많지 않은 수험생들을 위해서 3세트 모의고사의 활용 전략을 제안한다. 1회분은 파트별로 끊어서, 2회분은 LC와 RC로 끊언서, 3회분은 실전토익과 똑같이 120분 연속으로 풀어보는 것이다. 특히 1회분 강의에서는 초심자를 위한 해설과 팁들이 더 구체적으로 담겨 있으니 시간이 부족한 수험생이라면 1회분만이라도 풀어보고 강의를 수강한다면 큰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한다. 기본서로 기초를 다진 후 실전실력을 다질 수 있는 실전모의고사용도로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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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 - 전 세계 학습혁명 현장을 찾아 나선 글로벌 탐사기
알렉스 비어드 지음, 신동숙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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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짧은평: 미래 교육은 무엇을 지향해야할지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저자가 직접 만나본 세계 곳곳 혁신적 교육현장의 교육이념과 교육방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 두꺼운 볼륨이 다소 부담스럽지만 그만큼 풍성한 내용과 사례를 담고 있습니다. 딱딱하지 않은 형식으로 부담없이 읽어나가기에 좋습니다. 교육에 고민과 흥미를 갖고 있는 모든 분들께 추천합니다.


정시를 확대한단다. '공정성'을 향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요즘의 시류를 감안하면 불가피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교현장과 체험 및 교육의 다양성을 고려한다면 학생부 비중을 낮추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이라는 비판도 있다. 무엇이 정답일까? 글쎄,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정권과 시류에 따라 뒤집히는 교육정책 속에서 혼란과 불안을 겪는 것은 오로지 수험생과 학부모, 교육현장의 몫이라는 점이다. 교육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당장 수험생 '개인'의 입장에서 학교는 대학이라는 과실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이며 도구에 불과한것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른'이라면 그래서는 안된다. 그렇게 여겨서는 안된다. 삶을 조금이라도 먼저 살아온 어른에게 있어서 교육은, 사람을 향한 애정과 사랑을 담고 있어야 한다. 4차산업혁명이다, AI다 뭐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속에서 우리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그들이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지향해야 하는것일까? 우리는 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것일까?

Natural Born Learners

114 "갑자기 나는 뭔가 잊고 있었던 것에 대한 흐릿한 의식, 생각이 되살아나는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언어의 신비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물'이라는 단어가 손 위로 시원하게 흐르는 기분 좋은 무언가를 의미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살아 있는 그 단어가 내 영혼을 깨우고, 빛과 희망과 기쁨으로 영혼을 해방시켰다! 모든 것에 이름이 붙어 있었고, 각 이름은 새로운 생각을 낳았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손에 만져지는 모든 물건이 생명으로 진동하는 듯했다."

책 <앞서가는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는 '오늘'의 교육이 가져야 할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제목만 놓고 본다면 단순히 성적 좋은 아이들이 쏠쏠하게 활용하고 있는 특급 학습비법을 담고 있을것만 같지만, 560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이 보여주듯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과 범위는 그보다 훨씬 포괄적이다. 책의 원저는 <Natural Born Learners - Our Incredible Capacity to Learn and How We Can Harness It>다. 즉 우리의 본연적 학습능력과 잠재력에 관한 책이다. 어린시절을 돌이켜 볼 것도 없다. 당장 가까이 있는 아기나 어린 아이만 지켜봐도 그들은 즐겁게 배운다. 탐험하고, 시도하고, 학습하고, 웃는다. 이 모든 과정에 어떠한 물질적 보상이나 강제성도 개입하지 않는다. 그저 '좋아서' 배울 뿐이다. 순수한 호기심이 그들의 원동력이다. 그런데 학습의 무대를 학교로 옮겨온다면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진다. 학습과 공부는 그저 지루하고 따분한, 대학을 위한 도구이며 강제성을 띈 노동이다. 어쩌다 이렇게 된걸까? 어린 시절의 순수한 호기심과 배움을 향한 열망은 모두 다 어디로 숨어버린걸까? 학교에서 시작된 문제라면, 학교에서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안에 숨어있는 순수한 호기심을 회복시켜줄 학교가 존재한다면,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운 곳이 아닐까? 그곳의 면면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21세의 교육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172 내가 생각하는 교육은 모든 아이들이 각자 삶의 목적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창조적으로 표현하고, 그렇게 하는데 필요한 도구를 완전히 습득할 수 있게 돕는 과정이 될 것이다.

<앞서가는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의 저자 '알렉스 비어드'는 《가디언》, 《파이낸셜 타임스》, 《와이어드》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교육 칼럼니스트다. 하지만 그 이전에 교사였다. 아이들을 직접 마주하고 가르치며 10년간 교육한장에서 몸 담았던 그는 여느 초보 교사처럼 힘든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친다. 그렇게 10년간의 값진 경험을 계기로 그는 하나의 목표를 세우게 된다. 학교를 재해석하고 삐걱거리는 세계의 교육 시스템을 재설계하겠다는 목표다. 이 책은 '21세기의 교육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담고 있다. 그 질문의 답을 찾아 저자는 세계 곳곳의 학교를 직접 방문한다. 뉴욕, 런던, 파리, 헬싱키, 서울, 홍콩 등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만나본 혁신적인 모습의 학교와 교사와 교육방법들을 소개한다. 세계적인 IT 인재 교육전문기관인 '에꼴42'에서부터 품성개발을 중심에 놓고 교육하는 '브레이크스루 마그넷 스쿨'까지, 각각의 개성과 혁신적인 교육방법을 갖추고 있는 다양한 최신 교육현장들의 면면을 섬세하게 들여다본다.

새롭게 생각하기, 더 잘하기, 더 깊이 관심갖기

149 윌링햄은 "작업 기억을 먼저 거치지 않고서는 장기 기억에 남을 수 없다"면서 "일반적으로 무언가에 의식적으로 집중한다는 것은 그것이 장기 기억에 남게 될 것이라는 의미"라고 했다. 집중하지 않고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이다.

150 그녀는 컴퓨터의 작동 방식에서 인간이 따라야 할 방법적 측면을 발견했다. 복잡한 기술은 간단한 여러 단계와 각각의 구체적 요소로 나눌 수 있다. 그렇게 한 후 단계를 차례로 습득하면 되는 것이다.

목차는 크게 3부로 나눠진다.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주도할 세 가지 핵심적인 신념에 따른 분류다. <1부-새롭게 생각하기>에서는 인간과 교육을 향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난 학습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최신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우리가 '타고난 학습자들'임을 증명하며 잠재된 학습능력을 일깨우기 위한 구체적 교육방법과 적용사례들을 제시한다. <2부-더 잘하기>에서는 변화하는 사회환경에 발맞춰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새롭게 제시한다. 바로 '창조성'과 '목적'을 키우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를 표현할 방법을 기르고,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있게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교육의 가장 고귀한 목표라고 강조한다. <3부-더 깊이 관심갖기>에서는 교육의 본질에 관하여 깊이 성찰해본다. 효율과 경쟁을 내세우는 사이 우리가 놓치고 지냈던 교육의 본질, 학습의 윤리적·인간적 측면이다. 저자는 진화하는 세상의 필요에 맞춰 교육방식을 발 빠르게 조절하지 못한다면, 가치관을 잃은 세대를 양산할 위험이 있다며 우려를 표한다. 인류와 지구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서 사회적·감정적 지능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고 있는 곳곳의 교육 현자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마음챙김으로 실패를 돌파하는 브레이크스루 마그넷 스쿨

380 그녀는 학생들이 자기감정에 대처할 방법을 찾지 못하면 어떤 점이 위태로워지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나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녀는 학생들이 좌절감을 자주 느낀다고 말했다.

381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생각하고 행동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뿐만이 아니라, 느끼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학교는 코네티컷 하트퍼드에 위치한 '브레이크스루 마그넷 스쿨reackthrough Magnet School'이다. 이 학교는 품성 교육 특성화 학교로 브릭BRICK이라는 학교이념을 갖고 있다. 실패를 돌파구BreackThrough로 바꾸는 법을 배우고, 각자의 행복에 책임Responsibility을 지고, 온전함Integrity을 배우고, 기여할Contribute 기회를 찾고, 지식Knowledge을 넓힌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열쇠로서 '마음챙김'을 제시한다. 이 학교에서는 읽기와 수학에 들이는 것과 똑같은 노력을,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사회성을 발달시키고, 지금 현재 자신의 기분을 알아차리는데 투자한다. 스스로나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고, 도움을 요청해도 괜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지도한다. 마음챙김은 세상을 바라보는 특별한 인식의 태도다. '매 순간, 아무런 판단 없이 지금 일어나는 일, 즉 호흡, 몸, 생각, 감정, 주위 환경을 자각하는 것'이다. 학교는 '긍정 심리학'과 '인지행동치료CBT'에 마음챙김을 연결함으로써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현명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 순간에 일어나는 일을 인식하고, 촉발된 행동을 생각하고, 그 결과를 분석하는 구조다. 자기 인식에 익숙해짐으로써 벌어진 일의 단계를 구별하고 감정적 반응을 다스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학교에는 '마음챙김 자리'가 있다. 대여섯 살밖에 안 된 아이들이 마음의 동요를 인식하고는 슬며시 마음챙김 자리로 가서 숨을 고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좋아! 이제 나한테 투지가 있다는 걸 보여줄거에요.' 실패에서 돌파구를 찾는 방법을 갖추게 된 것이다. 상상만해도 귀여우면서 놀라운 장면이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이해하며 적절하게 대처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춘 아이가 누리게 될 삶의 모습은 얼마나 생기있고 유쾌할지 생각만해도 마음이 벅차올랐다. 국어나 영어나 수학도 중요하지만, '실패를 돌파구로'바꾸고 스스로의 감정과 마주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우는 것, 우리가 아이들에게 키워줄 수 있는 고귀하고 소중한 덕목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법 뿐만 아니라 '느끼는 법'을 가르치는 브레이크스루 마그넷 스쿨, 학교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의 교육에 있어서도 본받을 점이 많은 학교였다.

BRICK을 기억하며

374 "아이들은 마시멜로를 하나 더 받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세상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에 대한 생각을 통제할 수는 있습니다."

교육에 정답이 있을까? 정해진 시간과 에너지와 예산이라는 자원을 이용하여 우리는, 소중한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책에 인용된 한 구절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에만 열망을 품을 수 있다."는 문장이다. 구체적이고 다양한 경험에 뛰어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그런데 비단 아이들만 그럴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다. 우리는 새로운 경험과 지혜를 만남으로써,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열망을 품는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누군가를 가르치게 될 상황을 위하여, 혹은 나 자신을 가르치는 삶의 주체로서 몇 가지 가치와 덕목들에 번뜩임을 느끼며 열망을 품을 수 있었다. 특히 '브레이크스루 마그넷스쿨'의 BRICK이 그렇다. 과거의 실패에서 지혜를 얻고, 미래의 실패를 두려움 없이 돌파하며, 삶의 주체로서 스스로의 행복에 책임감을 갖고, 성취나 성공과 별개로 나 스스로 온전한 사람임을 기억하며, 나의 안정과성장과 기여해준 가족과 친구와 공동체에 기여할 기회를 찾고, 들끓는 태생적 호기심을 바탕으로 지혜를 넓히는 놀이를 멈추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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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만난 붓다 - 불교 명상과 심리 치료로 일깨우는 자기 치유의 힘
마크 엡스타인 지음, 김성환 옮김 / 한문화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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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추천합니다

1.심리상담의 과정에서 발견한 통찰의 지혜를 삶으로 가져오기 위한 기술을 배우기를 기대하는 분들께

2.불교적 지혜를 통해 스스로를 성장시킨 심리학자의 경험담을 통해 더 나은 상담자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상담자들께

3.팔정도에 대한 서양 심리학자의 독창적 해석은 과연 어떨지 호기심을 갖고있는 분들께

4.팔정도를 삶에 적용함으로써 마음의 안정과 성장을 이뤄내기를 기대하는 분들께

5.평소 스스로의 의지와 달리 불안이나 나쁜 습관에 따라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난 뒤 뒤늦게 후회하곤 하는 분들, 주체적 삶을 기대하는 분들께

1.나와 심리상담

24 명상의 요점은 그 태도를 일상의 삶 속으로 가져오는 데 있었다. 현재 순간을 더 충실히 살아내고, 자신을 해치는 짓을 중단하고, 자신과 타인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고, 자신의 충동에 휘둘리지 않도록 경계하고, 바쁘고 힘든 일상 한가운데서 더 관대하게 베푸는 태도를 취하는 것, 그것이 명상의 목적이었다. 나는 수년 간 정신과의사로 일하면서 심리 치료의 목적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품게 되었다.

심리상담을 처음 시작한 것은 작년 봄이었다. 목표로 했던 일을 오래도록 이뤄내지 못하며 패배감과 좌절감은 누적되었고, 반복되는 자기비난과 자기비하속에서 그 무엇도 해내지 못 할 것만같은 무력감이 정점에 이를 즈음이다. 큰 기대를 갖고 시작하지는 않았다. 다만 병원에 가기는 겁이났고 인터넷에서 우연히 접하게 된 정보를 따라서 두려움 반 걱정 반, 그 틈새에 남겨진 아주 미미한 기대감을 부여잡고 상담을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값진 기회였고 현명한 선택이었다. 긴 상담의 과정에서 얻은 소중한 통찰들 중 한 가지만 꼽으라면 이것을 고르겠다. "지금 내가 확고하게 옳다고 믿고 있는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내가 맞다고, 옳다고, 타당하다고, 도덕적이라고 믿어의심치 않은 것들을 다른 관점에서 곰곰이 차근차근 들여다본다면 충분히 다르게 해석될수도 있다는 점이다. '비합리적 신념'이다. 거창하게 적어놓았지만 일상에서 경험하는 아주 사소한 신념도 있다. 이를테면 '나는 길치다'라는 신념처럼 말이다.

나는 늘 길치였다. 어려서부터 낯선 장소에 방문한다는 것은 나에게 꽤나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길치라는 '믿음'+그렇기 때문에 길을 잘 찾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런데 곰곰이 들여다보면 이것이 반드시 두려워해야할만한 일은 아니다. 앞서의 두려움은 (1.나는 길치라는 믿음 2.거기에서 파생될 결과에 대한 두려움)으로 구성되어있다. 먼저 2번부터 살펴보자. 내가 길을 잘 찾지 못한다면 그것은 두려운 일인가? 조금 헤멜수도 있고 실수할 수 있고 그래서 약속에 늦을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거기에서부터 적절하게 대처하면 된다.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다면 일찍 출발하거나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얻거나 스마트폰을 적절하게 활용하면 된다. 결과에 대한 나의 주관적 두려움은 객관적 현실보다 꽤나 과장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1번이 남는다. 나는 길치인가? 명백하고도 지속적인 길치인가? 그 기준은 뭔가? 뭐 상대적으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영원한가? 제대로 연습해보기는 했는가? 나는 길치라는 두려움 때문에 안전지대를 벗어나 새로운 길을 직접 맞닥뜨릴 기회를 회피함으로써 능력을 키울 성장의 기회를 스스로 앗아갔던 것은 아닐까? 결과적으로 지금, 나는 길치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지난 1년간 부지런히 많이 돌아다녔다. 고민하고 궁리하고 잘못가고 되돌아가다보니 나름의 감을 잡았다. 이제는 제법 길을 잘 찾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문제는 나의 선천적 무능함이 아닌, '회피'와 '두려움'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지만 사실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오래도록 믿어왔던 확고한 신념에 의심을 품고, 곱씹어보고 해체하고 재구성한다는 것은 그리 만만하지 않은 과정이었다. 특히나 마주하기 힘들었던 것은 그 모든 과정을 밟아가던 고비마다 빼꼼히 고개를 내밀던 나의 '두려움'이었다. 내가 당연히 나라고 생각하는 나, 그것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냉정하게 인식한다는 것은 굉장히 이질적이고 불편한 작업이었다. 여기서 굉장히 큰 도움이 된 기술이 바로 '마음챙김'이다. 지금 이 순간, 어떠한 가치판단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알아차리며 수용하는 것. 그 자각의 눈과 함께함으로써 나로부터 한 걸음 벗어나, 나를 관찰하며, 나를 수용하고, 나를 가다듬을 수 있었다. 단언컨대 마음챙김은, 나의 심리적 성장 과정에서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소중한 친구이자 보물이었다.

2.<진료실에서 만난 붓다>소개

22 불교와 서양의 심리 치료가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 이들 전통은 자아의 미숙한 태도를 의식적으로 자각하는 것이 고통을 극복하는 열쇠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런 의시것ㅇ이 없다면 우리는 온갖 충동에 휩쓸려 다니고 습관적 방어기제의 지배를 받는 상태로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불안과 욕망의 강도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 우리는 붓다와 프로이트가 그랬듯이 우리 내면에서 해방을 가능케 하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에 책임을 지는 태도는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준다.

서론이 길었다. 심리상담과 마음챙김이 얼마나 절묘한 케미를 이루는지, 심리적 성장을 위해 마음챙김이 얼마나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지를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 <진료실에서 만난 붓다>는 불교명상과 심리치료를 결합한 책이다. 저자인 마크 엡스타인은 하버드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정신과 전문의이자 심리학자다. 그는 의대에 다니던 젊은시절부터 명상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고질적인 불안을 극복하고 내적인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본업인 심리치료에 있어서만큼은 본인이 실천했던 불교적 지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지 않았다. 그 철학을 상담에 암시적으로 녹여냈을지언정 내담자에게 명상 자체를 권한 적은 거의 없다. 그가 선호했던 것은 프로이트적인 분석적 방법이었다. 사람들이 명상에 대한 과장된 기대를 품는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고민끝에 자신의 값진 체험을 심리치료에 직접 도입하기로 한다.

29 오래전 그때 내가 전문가 행세를 좀 덜 했더라면 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내가 설령 옳았다 하더라도, 이 직업에서는 '옳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심리치료사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내 조언이 당시 그 상황에서처럼 역효과를 낳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 책은 그러한 시도의 일환이다. '옳은' 사람이 되기보다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저자의 신념을 바탕으로, 불교적 지혜에 기반한 심리적 안정과 성장을 기대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진실된 제안이 담겨있다. 저자의 제안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팔정도를 삶으로 가져오는 것." 여기서 팔정도란 무엇인가? 붓다가 제안한 여덟가지 삶의 원칙이다. 기독교로 치면 10계명, 유교로 치면 오상(인, 의, 예, 지, 신)과 갖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팔정도는 다음과 같은 8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올바른 견해, 올바른 의도, 올바른 말, 올바른 행동, 올바른 생활, 올바른 노력, 올바른 알아차림, 올바른 집중이 그것이다. 여기서 '올바른'이라는 말이 눈에 띈다. 이를 반드시 준수해야 할 '규칙'으로 해석한다면 숨이 턱턱 막힐 것이다. 하지만 팔정도는 '규칙'이라기보다는 '지혜'에 가깝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혜롭기에 올바르다는 것이다. 왜 지혜로운가? 팔정도를 실천함으로써 우리가 자아와 맺는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과 습관적 행동이 우리를 좌지우지하는 불안정한 상태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을 완전히 살아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삶을 그 자체로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삶을 명상으로 만들어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책은 그러기 위해 팔정도의 구성요소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짚어나간다. 서론에서 저자가 생각하는 팔정도의 총체적 방향성을 정리한 뒤 '1장-올바른 견해'에서부터 '8장-올바른 집중'까지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친절하게 팔정도를 풀어 나간다.

독특하면서 좋았던 것은 팔정도를 현대인의 삶으로 섬세하게 끌고 들어왔다는 것, 그리고 현대인의 언어로 친절하게 풀어냈다는 것, 심리학자의 관점으로 '마음'을 겨냥했다는 점이다. 풍부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현대인이 일상에서 팔정도를 활용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했다. 그 모든 과정에서 전문가의 언어보다는 대중적인 표현으로 접근성과 이해력을 배려했다. 마지막으로 팔정도라는 거울을 이용하여 또렷이 빛을 한 곳에 모았다. 바로 '마음'이다. 수행자의 마음이다. 아무리 멋스럽고 훌륭한 규율도 지키는 이의 평온과 행복을 지향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저자가 제안하는 팔정도는 그 지향점이 또렷하다. 언뜻 그렇지 않은 듯 보여도 천천히 따라 읽어가다보면, 곰곰이 궁리해나가다 보면 결국 한 곳을 가리키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 팔정도를 실천하는 그 자신의 성장과 행복이다. 그러면서도 결코 이기적인 것은 아니다. 자신만을 위하지 않으면서 궁극적으로 자신을 위하게 되는, 자아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자아를 돌보게 되는, 8가지 요소가 긴밀하고 미묘하게 서로를 연결짓고 지지하는 팔정도. 책을 읽는 과정 내내 그런 팔정도의 매력에 흠뻑 취하게 되었다.

3. 가장 인상적이었던 팔정도의 구성요소, '올바른 의도'

64 우리는 너무 자주 이해할 수 없는 충동에 내몰려 행동의 주도권을 잃어버리곤 한다. 우리의 습관적이고 반복적인 반응 패턴이 훈련되지 않은 마음을 지배하는 것이다.

86 여기에는 갓 태어난 아기의 끊임없는 요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부담감과 부모의 이기적 동기를 인식하고 억제했을 때 느껴지는 만족감이 모두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가장 놀라운 점은, 위니캇의 말을 바꾸어 표현하자면, 그 모든 것에 상처받으면서도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에 있다.

부모의 마음 상태에 대한 그의 묘사는 명상가의 마음 상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명상가의 마음이 반드시 백지이거나 텅 비어있을 필요는 없다. 그의 마음속에는 부드러움도 있고 자기 비하가 뒤섞인 자기 연민도 있으며, 사랑이 마탕에 깔린 분노도 있고, 아기를 얄미워 하면서도 여전히 자장가를 불러 주고 요람을 흔들어주는 따뜻함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올바른 견해'의 가르침에 묘사된 분리와 변화의 불가피성에 대한 인식이 깔려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챕터는 '2장-올바른 의도'였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팔정도로 치자면 '정사유'에 해당하는 항목이다. 팔정도의 첫번째는 흔히 '정견'이라 불리며 책에서는 이를 '올바른 견해'로 풀어냈다. 개인적으로 겉핥기식으로 불교를 공부했을 때 '정사유'를 '바른 견해'에 기반한 '바른 생각' 정도로 이해했었다. '바른 견해'에 기반한 '바른 생각'이 다시 자연스레 '바른 말'로 이어질 것이라고 이해했었다. 이 역시 틀린 접근은 아닐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었다면 적용의 범위가 광범위하고 해석의 여지가 포괄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일상에서 실천하기에는 난감함과 어려움을 느꼈다. 무엇이든 삶에 직접 적용하기 위해서는 간결하고 명료하며 구체적일수록 좋기 마련이다. 그런면에서 저자가 제안하는 '올바른 의도'는 나에게,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스스로를 위해, 스스로를 향해 겨냥할 또렷하고 따뜻한 인식의 틀을 각인시켜 주었다. 바로 '헌신적인 어머니의 의도'다.

흔히 헌신적인 어머니라고 하면 '무조건적 사랑'을 떠올릴 것이다. 이것이 저자의 관점에서도 아주 틀린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속에 오로지 '사랑'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짜증나과 화가나고 심지어 아이를 미워하게 되는 순간들이 분명히 온다. 헌신적인 어머니는, 이러한 부정적 감정들을 느끼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선택하는 존재인 것이다. 사랑만 해야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발적 의지로 끝내 사랑에 머무르는 존재다.

삶이라고 해서 다를바 없다. 세상은 완벽하지 않다. '데미안'이 '프란츠 크로머'를 보며 느꼈듯 세상은 학교에서 배웠던 것 처럼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믿었던 사람이 배신하거나 곤경에 처한 나를 외면함을 볼 때 사람을 향한 신뢰와 애정은 산산조각난다. 나 자신은 또 어떠한가? 마냥 소중하고 사랑스럽기만 했던 나 자신이 무가치하고 쓸모없게 느껴질 때 우리는 좌절하고 절망한다. 심지어 자신의 일면에서 추악함과 역겨움을 느끼게 되는 순간들도 있다. 이럴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자신의 어두운 면을 외면하는 것이다. 나쁜 감정을 회피하는 것이다. 언뜻 손쉽고 간편해 보이는 이 방법은 삶을 온전하지 못하게 만든다. 억압된 무의식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 존재를 표출하기 마련이다. 불안이나 신경증과 같은 형태로 경험과 행복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타인과 세상 앞에 당당할 수 있을까? 타인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할 수 있을까? 삶을 온전하게 즐길 수 있을까? 책에 등장하는 사례자인 '클레어'에게는 욕구를 품을 권리에 대한 인식 자체가 결여되어 있었다. 욕구를 검열하고 회피하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실현할 수 없는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이 무언가를 갈망할 권리조차 없다고 믿는 사람이 어떻게 주체적으로 행복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 네버.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회피하는 태도는 일종의 마비 상태를 유발한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느낌들과의 접촉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감정이 차단되고 느낌이 거부되며 기쁨이 없는 사람, 겉보기에는 평온해보일지언정 결코 인간적일 수 없다.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따뜻한 행복감과는 괴리되어 있다. 흔히 명상가의 마음을 잔잔하고 평온한 호수와 같은 상태로 비유하곤 한다. 다만 저자가 제안하는 '마음의 호수'는 부정적 감정이라는 불순물을 완벽하게 제거한 1급수 맑은물의 청정호수와는 거리가 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격동의 파도를 오롯이 끌어안는 드넓은 바다에 가깝다.

그러니 자신의 어두운 면을 외면하는 것이 아닌, 두 번째 방법이 필요하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과 느낌을 가감없이 알아차리고 포용하는 것이다.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로 유명한 사무엘 베케트는 말했다. "난 항상 우울할거야." 그러나 거기서 그친것이 아니다. "하지만 위안이 되는 건 내가 이제 이 어둠을 내 인격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거지. 어둠을 수용했으니, 그것은 이제 나를 위해 일하게 될 거야." 그렇게 베케트의 어둠은 창조적 영감의 원천으로 발현되기 시작했다. 지금껏 외면해왔던 모든 어두움을 알아차리고 포용하기 시작할 때, 오히려 무의식의 언저리에서 나조차 모르게 삶을 훼방놓고 휘둘러온 그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발목을 잡고 휘두르기는 커녕 나와 삶의 안녕을 위해서 앞장서기 시작할 것이다. 회복과 성장을 위한 든든한 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개인적으로 '느낌에 머물기'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요즘이다. 완벽주의적 성향을 갖고있는 나로서는 목표한 바가 기대만큼 잘 풀리지 않을 때 급속히 불안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불안이 불편하고 두렵다고 회피하다가는 삶을 온전하게 경험하며 즐길 수 없다. 불안의 근원이었던 완벽을 실현해내기는 커녕 오히려 능률과 성과를 더욱 떨어지게 만들 뿐이다. 삶과 도전으로부터 나 자신을 회피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러나 변화는 알아차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불안을 인식하는 것 만으로도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선 반사적이고 즉각적인 회피를 지연시킬 수 있었다. 불안을 포착하고 이름을 붙이는 것 만으로도 불안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줄어들었다. 불안한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잘 하지 못하더라도 현실적으로 크게 잘못되는 것이 아님을, 잘하지 못함에 대한 나의 두려움이 과장되어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잘 하기 위한 강박에 시달리는 나 자신을 친절과 연민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나 자신을 위한 마음의 여유 공간을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낸 빈 공간 안에서 나 자신을 돌봐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삶으로부터 도망치는 명상이 아닌, 삶을 이끌어가기 위한 명상을 연습해나가고 있는 요즘이다.

4.인상적이었던 또 한 가지 팔정도의 구성요소, '올바른 말'

99 우리는 끊임없이 어어지는 생각의 고리를 포착하고 의문을 제기하고 제어함으로써 제멋대로 쏟아져 내리는 내면의 폭포를 중단시킬 수 있다.

108 '올바른 말'의 가르침을 실천한다는 건, 그런 감정들을 정면으로 직시하면서 우리 스스로 그 감정들에 부여해 온 해석에 집착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결국 그 감정에 대해 습관적이고 자학적인 방식으로 반응하는 대신, 그 느낌을 편하게 대하면서 불쾌함을 받아들이고 그것과 함께 숨을 쉬고 그 감정에 대해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늘어놓는지 자문해야 한다는 뜻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팔정도의 세번째 요소는 흔히 '정어'로 표현되는 '올바른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정견'에서 견해를 세우고, '정사유'를 통해 올바르게 생각하며, '정어'에 이르러 그것이 올바른 언어라는 형태로 입 밖으로 표현되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 독서를 통해서 팔정도에 대한 나의 이해체계에 분명한 변화가 있었다. 앞서 살펴보았듯 저자에 따르면 '정사유'는 '바른의도'로 해석된다. 의도라 함은 생각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지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른의도라는 지향점을 또렷이 밝힌 후에, 이에 기반한 바른 생각이 파생되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부족한 자신을 저주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과, 그런 자신이라도 사랑으로 감싸안는 '헌신적인 어머니의 의도'를 가진 사람의 생각이 같게 흘러갈리 만무하다. 이렇듯 '의도'는 생각의 발현과 향방을 결정짓는 결정적인 시작점이자 변곡점이다.

책은 2장에서 '올바른 의도'를 다룬 뒤 3장에서 '올바른 말'을 다룬다. 잠깐, 그럼 생각은? 생각이 곧 말이 될텐데, 생각을 건너뛰고 말부터 다룬다는 것은 뭔가 어설프고 이상하지 않은가? 걱정할 필요 없다. '올바른 말'에 생각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바로 '자신에게 건네는 말'을 통해서다. 팔장도를 통해서 스스로의 마음을 돌보는 것이 이 책의 지향점이듯, 저자가 강조하는 '올바른 말'은 무심코 자신에게 건네는 습관적 언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인식의 틀에 따라서 나에게 건네는 말이 달라지며, 스스로에게 어떤 말을 빈번하게 건네느냐에 따라 스스로를 바라보는 인식의 틀이 변화할 수 있다. 말과 인식은 꼬리를 물고 순환하며 '내가 바라보는 나'의 형태를 조각해나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려본다 과거의 잘못을 후회하고 미래의 실패를 두려워하며 현재의 모습에 실망하고있는 그의 모습을 생생히 떠올려본다. 결코 한심해보이거나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친절과 연민으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분주하게 고민하고 행동하려드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정작 스스로를 향해서만큼은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아왔다. 사회통념상의 기준이나 내가 스스로 설정한 기준에 못미치는 결과를 내놓았을때면 혹독하게 스스로를 다그치고는 했다. 마치 나의 삶과 존재가 결과물을 내놓기 위한 도구라도 되는듯이 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좋은 결과는 내 삶의 부산물일 뿐이다. 나는, 나의 삶은 도구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모든 경험의 과정 속에서 나의 삶은 의미가 있으며 그 가치는 결과에 좌우되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름의 잣대로 가치를 평가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어떤 혹독한 외부의 비난에도 스스로를 변호하고 위로하고 돌볼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무엇보다도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여기에서 새롭게 시작할 기운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타인과 세상을 보다 열린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게되지 않을까? 삶을 그 자체로 즐길 수 있게되지 않을까?

81 나는 이제 불편한 느낌들을 성가신 장애물로만 대하는 대신 그 느낌에 대해 탐색하고 숙고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 더 깊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건에 대한 누군가의 반응은, 사건 그 자체보다도 반응하는 이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화가 나쁜 것이 아니다. 모든 일어난 사건에는 인과관계를 구성하는 이유가 있다. 화가 났다는 것은 그것을 촉발시킨 사건보다도 그러한 반응을 일으킨 나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은것을 말해준다. 자신을 탐구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반가운 여정의 기회를 만나게 된 것이다. 좌절도, 실패도, 짜증도, 분노도 마찬가지다. 흔히 뭉뚱그려 이야기하는 '나쁜 감정'들을 회피한다는 것은 깊은 곳의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놓쳐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돌아보면 나는 회피로 점철된 삶을 살아왔다. 잘 하지 못하는 것을 회피했고, 새로운 시도를 회피했으며, 겁이 나면 일단 회피했고, 내면의 부정적 감정은 물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회피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태도가 얼마나 많은 생생한 경험과 성장의 기회를 앗아갔는지 안다. 무엇이 나를 기쁘게하는 길인지 알게 된 이상 태도와 행동을 바꾸지 않을 이유가 없다. 또 다른 챕터에 담긴 '올바른 행동'을 통해서다. 삶을 구성하는 모든 '지금 이 순간'에서 마주질 경험과 느낌들을 판단없이 포용하는 생기있는 삶을 기대해본다.

5. 끝으로

272 그렇지만 지금 내게는 불교와 심리 치료 덕분에, 삶이 무엇을 제공하든 그것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수단이 갖추어져 있다.

272 불교 가르침의 핵심은 자아의 불필요한 긴장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해방시키라는 것이다. 팔정도의 모든 측면은 그와 같은 이기작 집착을 상쇄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그렇지만 불교적 의미의 구원을 성취하려먼 자아의 욕구나 필요를 건너뛰는 것이 아니라 그 욕구들에 관심을 기울여 주어야 한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열린 마음으로 그 욕구들을 탐색하고 보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책은 마지막 9장에 해당하는 '글을 맺으며' 챕터를 통해 앞서의 내용을 총정리하는데, 이 항목의 부제가 바로 '삶이 무엇을 제공하든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훈련'이다. 즉 팔정도를 체화함으로써, 도전으로 가득한 일상의 순간속에서 마주칠 모든 미지의 변수들을, 두려움 없이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삶은 어떤 모습일까? 불안이 사라진 마음으로, 두려움 없는 자신으로 도달하게 될 삶의 종착점은 어디일까? 모른다. 팔정도가 가리키는 '올바른 길'은 정답이 정해진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답이 정해진 이상적 자아가 되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팔정도가 선물할 것은 오로지 '자유'다. 그 때 거기의 지금 여기에서부터 무엇을 시작할지 역시, 오로지 오롯이 우리의 자유다.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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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형 인간 - 천재인가 미치광이인가
대니얼 Z. 리버먼.마이클 E. 롱 지음, 최가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스스로 ADHD가 아닌가 의심했던 시기가 있다. 아니, 확신했던 시기가 있다. 목표했던 일들이 잘 풀리지 않으면서 그 이유를 점검해보게 되었고 특히 나 자신이 충동조절에 취약한 면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목표가 있다면 계획을 세우고 인내심과 끈기를 갖고 그것을 추진해나가야 할텐데, 작은 변수에도 쉽게 흔들리며 관심과 주의가 흐트러지기 일쑤이니 성취와 성공은 요원한 일이었다. 자극적이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성향, 그것은 나에게서 떼어놓을 수 없는 기질이었고 그것은 늘 나를 성공과 행복으로부터 가로막는 장애물로만 작용했던 것으로 생각됐다. 극복하고 떼어내야만 하는 발목의 모래주머니 같은 것이다. 그런데 꼭 그렇기만 할까? 문제는 기질 자체가 아닌 이용자와 활용법 아니었을까? 모래주머니는 기질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편협한 관점과 태도가 아니었을까?

<도파민형 인간>은 쉽게 불타오르고 쉽게 권태로워지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쉽게 불타오르기에 성공에 이르기 쉽지만 쉽게 권태로워지기 때문에 무기력해지기도 쉽다. 새로움을 추구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도 쉽지만 눈 앞의 자극에 매몰되어 중독에 빠지기도 쉽다. 위대한 발견을 이뤄낼수도 있지만 알코올이나 약물중독과 같은 방해물에도 취약하다. 그러니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혜다. 자신 안에 숨어있는 강력한 잠재력을 활용할 수 있는 지혜다. 자신의 기질이 삶의 성취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을 넘어, 성취와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강력한 추진력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운영하는 지혜다.

책 <도파민형 인간>은 도파민형 인간의 특징과 문제점, 그리고 자신의 독특한 기질을 긍정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다루고 있다. 사랑, 중독, 인내, 성취, 창의력, 정치적 성향, 인류의 진화와 번영 등 다양한 방면에서 '도파민'을 들여다본다. 더 많은 것, 더 자극적인 것, 더 놀라운 것에 끊임없이 매료되는 도파민형 인간. 이러한 집단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나눌 수 있을까? 나름의 척도에 따라 나름의 기준으로 상황에 따라 다르게 사람들을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주 무기력한 사람이 아닌 이상 삶의 어느 언저리에서 누구나 '도파민형 인간'으로 살아가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끌어당기는 꿈과 자신을 제약하는 현실의 무엇 앞에서 주저하고 갈등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도파민'에 대해 이해하고 배우는 것이,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도파민을 '미래지향적 화학물질', 여타 세로토닌, 옥시토신, 엔도르핀 등을 '현재지향적 화학물질'로 분류한 대목이다. 당면한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단기적 자극이라는 충동에 휘둘릴 때 "나는 어떤 시간에 가치를 두고 있는가?"라고 점검해본다면 좀 더 섬세하게 방향을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갈등의 상황에서 유용하게 사용하는 방법이 '내가 기대하는 미래를 선명하게 상상하는 것'이다. 이럴 때 자연스럽게 의식이 또렷하고 명료해지는 경험을 하고는 한다. 오랜 시행착오끝에 발견한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이다. 이러한 인지적 기술이, 미래를 갈망하는 '도파민'의 활동이 더욱 효율적이고 집약적으로 움직이도록 도왔던 것일까? 현재와 미래 모두 삶을 관통하는 중요한 인생의 무대다. 또렷하고 명료한 의식을 바탕으로 한 균형잡힌 태도로, 소중한 삶의 두 무대를 모두 놓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개인적으로 책 <다빈치형 인간>을 읽고 상당한 고양감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 <도파민형 인간>역시 궤를 같이 하는 책이다. 전자가 저술가의 관점에서 역사적 사례와 다양한 이야깃거리에 초점을 맞췄다면 후자는 연구자의 관점에서 구체적이고 분명한, 과학에 기반한 데이터들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도파민을 이해하고 현실의 삶으로 이어갈 수 있는 전략으로 연결했다는 점에서 장점을 갖고 있다. <다빈치형 인간>을 흥미롭게 읽은 독자라면 이 책 <도파민형 인간>역시 흥미롭고 유용한 독서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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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 : 나를 변화시키는 조용한 기적 배철현 인문에세이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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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힘이 세다. 언어의 힘은 강력하다. 힘겨웠던 시절 내면의 혼란을 흩어내고 마음의 중심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일기'를 쓰기 시작한 덕분이 컸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으로 나아가는 사이에, '휘둘리는 것'에서 '다룰 수 있는 것'으로 건너가는 사이에, '언어'라는 '교량'이 있었다. 쓰고, 생각하고, 나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많은것들이 분명하고 명료해졌다. 어떤 이들은 사고의 경계를 설정하고 확장을 제한하는 언어를, 궁극적으로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글쎄, 언어를 넘어서기 위해서라도 우선 언어에 이르러야만 한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며 신념이다.

세상을 또렷하게, 세상을 명료하게

<정적>의 독서는, 그런 나에게 세상을 또렷하고 명료하게 바라보도록 돕는 '언어'의 힘을 다시금 생생하게 느끼도록 해주었다. 4부, 28개의 키워드를 여행하는 과정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눈을 더욱 새롭게, 신선하게 가다듬을 수 있었다. 그렇게 획득은 관찰의 눈으로 다시 세상을 바라보는 과정은 내적 성장의 기회를 주었음은 물론 발견의 기쁨도 함께 선물했다. 책장을 덮으며 "일상이 단순하고 지루했던 것이 아니구나.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구나."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감탄했다. 열린 발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를, 분주하게 움직이는 일상의 한켠에서도 부지런히 빈번하게 '정적'에 이를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 바라보았다. 스타일과 의도를 갖춘 선명한 개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심연'과 '수련'을 넘어 '승화'를 향하여

10 '정적'은 잠잠한 호수와도 같은 마음의 상태다. 잡념으로 인해 흔들리는 마음의 소용돌이를 잠재우고 고요하며 의연한 '나'로 성숙하는 시간이다. 정적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려면, 그 안에 부단한 움직임을 품고 있어야 한다. 정적은 '정중동'이다.

<정적>은 고전문헌학자 배철현님의 에세이다. 사실 에세이라는 단어를 쓸까말까 잠시 고민했는데 이유가 있다. 보통의 에세이와 달리 주제와 흐름과 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주제는 바로 '위대한 개인'이다. 위대한 개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비우고, 채우고, 새롭게 갖추고, 새로이 거듭나야 할 요소들을 담은 시리즈다. 이 책은 『심연』, 『수련』, 『승화』와 함께 네 권으로 이루어지는 '위대한 개인'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자신의 '심연'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미세한 소리를 감지하고,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수련'을 거친 사람은 '정적'을 통해 자기 자신이 변화하는 고요한 울림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앞서의 두 단계가 중요치 않은 것들을 '비우는'느낌이라면, <정적>에 이르러서는 비로소 나아갈 방향을 재정립하고 스스로를 채워나가기 시작하는 일종의 변곡점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세 단계를 거친 후 마지막 '승화'의 단계에서 저자가 선물할 키워드는 무엇일지 기대감을 품으며 책장을 덮었다.

적극적 열밍으로서의 자유

217 자유의 소극적인 의미는 탈출이다. 남들이 만들어놓은 정신적이며 육체적인 굴레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 소극적인 자유는 자유가 지닌 가치를 드러내지 못한다.

218 자유는 탈출이 아니라 열망이자 추구다. 자유는 자신이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제대로 기능한다. 자유는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게 만들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다양하고 조화롭게 만드는 역동적인 힘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키워드는 '3부:포부-내가 나에게 바라는 간절한 부탁'의 6번째 키워드인 '교육'이다. 저자는 교육을 '어제의 세계로부터 탈출하는 훈련'이라는 부제로 정리한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교육은 '인적자원'을 양성하는 성과지향적 교육이 아니다. '위대한 개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성장지향적 교육이다. 저자는 서양에서 고대로부터 존재했던 중요한 가치를 고취하는 교육과정, 라틴어로 '트리비움'이라는 단어를 풀어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적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교육인 '아르테스 리베랄리스', 즉 '교양 교육'을 거듭 강조한다. 우리가 흔하게 사용하고 있는 '에듀케이트'라는 단어의 어원을 들여다보면 학생들이 각자 지니고 있는 고유함을 자극해 그것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거룩한 수련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각자의 개성을 가진 학생 개개인의 내재된 고유함을 발견하고 실현해내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라는 것. 정형화된 틀에 맞춰 실용적인 '인적자원'을 '생산'해내는 것이 목적인듯 보이는 우리의 교육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큰 이야기였다. 한편 나 역시 자 자신을 교육해나가는 주체이자 책임자로서, 열망을 추구하고, 역량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개성을 발현하고 ,의지를 실현하며, 적극적 자유를 누리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존엄한 인간으로, 자유로운 개인으로

https://youtu.be/ubZrAmRxy_M

자신의 기원과 조우하는것만큼 신비한 순간이 있을까. 영화 <모아나>에는 매우 신화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주인공 모아나가 비밀 동굴에서 숨겨진 조상들의 배를 발견하는 장면이다. 모아나의 시대에는 항해를 떠나지 않는다. 이불밖은, 아니 방파제 밖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아나의 열망을 알아본 할머니가 슬그머니 모아나를 비밀동굴로 안내한다. 모아나는 어둠속에서 오래된 북을 발견한다. 먼지쌓인 북을 힘차게 두드리자 '용감한 항해자'였던 조상들의 진면목이 눈앞에 생생히 펼쳐진다. 해류를 읽고 별을 보며 방향을 찾던 조상들은 길을 알았다. "We know the way!"라고 자신있게 외치며 항해를 떠났다. 그런 조상들의 역사와 조상들이 가졌던 힘을 알게 된 모아나는 곧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는다. "우린 항해자였어"라고 외치며 오랫동안 내면에 존재했지만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내면의 보물을 되찾는다. 용감하고 단호하게, 항해를 떠난다.

49 그 여정은 깊은 묵상을 수련하는 자에게 수여되는 선물이다. 그는 그 길로부터 이탈시키려는 그 어떤 달콤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가야 할 이정표가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음의 지도가 '의도'다. 의도는 목적지를 향해 걷는 수행자의 내공이다. 평온한 사람은 마음속 깊이 은밀하게 의도한 것들을 말과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53 인생은 자신의 운명을 모르는 자에게는 불평과 불만의 대상이다. 그는 자신이 가야 할 길에 들어서지 않고 남들에게 주어진 길을 따라가기 때문에 신명이 나지 않아 하루하루가 힘들다. 그러나 자신의 임무를 아는 사람은 인생 여정의 지도를 가졌기에 하루하루 가야 할 구간을 안다. (...)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재산 중 시간을 가장 값진 것으로 여긴다. 하루라는 시간을 장악하기 위한 사색, 그리고 사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삶의 나침반인 의도는 하루를 가치 있게 만든다.

저자는 <인간의 위대한 여정>을 통해 빅뱅에서 호모 사피엔스까지 인류의 여정을 되돌아본 바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잊어왔던, 혹은 소흘히했던 위대한 가치를 재발견한다. 바로 '이타심'이다. 투쟁과 가득한 세상을 살아왔고 경쟁으로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흔히 생존의 비결이라고 생각하는 '이기심'이 아닌, '이타심'이 인간을 살아남게 했으며 '이타적 유전자'야말로 인간 생존과 번영의 숨겨진 비밀이라고 강조한다. 역사와 유물의 외적관찰을 통해 '인간'을 발견하던 저자가 이번에는 '개인'을 향한 내적성찰과 발견의 기록을 들고 왔다. 성경, 신화, 고전문학 등 인류의 오래된 기록들 속에 녹아있는 삶의 지혜들을 엮어냈다. 우리는 인간이며 동시에 고유한 개인이다. 인간으로서의 보편적 존엄을 지키며 개인으로서의 고유한 자유를 누리는 것, 더할나위없이 빛나는 균형의 실현일 것이다. 문제는 나침반이다. 바다를 누비는 항해자가 별과 해류를 읽고 방향을 잡듯, 선택의 기로에서 지혜를 구할 삶의 나침반이 필요하다. 누가 만들어줄 수 없고 만들어줘서도 안된다. 스스로 탐구하고 발견해야 한다. 자신만의 나침반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반갑고 고마운 단서가 있다. 인간의 삶이다. 인간의 기록이다. 역사와 고전이다. 자신만의 나침반을 갖고 "We know the way!" 라고 외치며 용감하게 항해를 나섰던 위대한 인간, 영웅들의 기록이 있다. 그들이 전해줄 영감과 지혜가 마중물이 되어 깊은 내면의 영혼과 감응함으로써 위대한 개인은 고양되고 성장하며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기쁘고 값진 독서였다. 『심연』과 『수련』도 얼른 사서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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