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무게가 엄청난 시절이 있었다.
그때에도 사회가 가족이 함께 육아를 하고, 어느정도 자유와 방임으로도 키우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오롯이 핵가족내에서 키워야 하고, 한두자녀만 두다보니 더 힘이 들고, 주변의 속내는 모르다보니
나만 고생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자식은 내리사랑이라 하지만, 나는 받은 것 없다고 생각하면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이정도도 다행이다 생각할 수 있다가도 조금이라도 향상하고자하는 욕심이 야금야금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날에는
어쩔수 없이 후회와 실망이 나타나곤 한다.
공부도 책상에 오래 앉아있고 노력만으로 성적을 보장 못하듯이
사랑만으로도 아니 사랑이라는 것도 어느정도는 재능이나 실력의 차이가 있는 듯하다.
이것을 느껴야만 진실된 자식 사랑을 하게되고, 또 괜한 후회나 실망을 안하게 되는 듯하다.
육아 관련으로는 아빠가 쓴 것도 많지만, 대개는 자기 반성이나 도전기 같은 형식이 많았다.
엄마가 쓰는 내용들은 혼자 싸우다 지치고 후회하거나, 이 산이 아닌것같다며 다른 산을 오르는 류가 많았다.
어떻게 보면 내가 상대해야하는 것에 대한 파악이나 내 자신, 능력에 대한 판단이 부족한 문제들이였다.
그리고 자식앞에서는, 사랑이라는 이름앞에서는 한 번의 실패를 큰 자존심의 손상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나를 얼마나 포기해야하나. 나를 얼마나 챙겨야하나. 내 능력, 체력은 어디까지인가.
아이가 순하고 편식이 없다면, 재우고 먹이는 부분에서의 수고만 해도 엄청나게 줄지만 이런 것은 모르는 듯하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마냥 쉬운 길만 있지는 않을것이다. 게다가 병치레라도 한다면...
갖고 있는 행복은 보지못하는 치르치르, 미치르의 파랑새처럼, 다른 집들의 아이들만 보고 있는 건 아닐까?
단지 다른 아이들, 다른 집들과의 차이에만 너무 신경을 쓰고 사는 것같다.
새벽에 깨고, 생각을 다듬고, 글을 쓰는 것도 훌륭한 능력이고 사랑을 표현하는 한 방식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다 할 수 있고, 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늦께까지 일하고 들어와 집안일을 도와 주는 남편도 있지만, 하루의 모든 집중과 에너지를 다 써야만하는 직종도
있고, 그정도의 체력뿐이 안되는 안타까운 사람도 있다.
나도 스스로 나를 오롯이 모르는데, 아무리 배우자라도 전부를 알 수 있을까? 사랑하기에 숨기고 있는 내용도 있다.
표현을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잘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큰 일이 될때까지 입을 꾹 다물고 참는 사람도 있다.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면, 나를 바꾸는 것이 가장 쉽고, 첫 번째로 해볼만한 일이다.
'오늘 예쁜데.' 라는 말에 '그럼 다른 때에는 안 예뻤다는 말이야?'라는 말을 내뱉는 내말투를 먼저 되짚어보아야한다. 내가 받고 싶은 것을 먼저해보고, 또 내가 과연 댓가를 바라고 하는 것들이 '사랑'이라는 이 멋진 말에 어울리는 행동이였는지도 되짚어 보자.
새벽 4시반.
하루를 마무리짓는 반성과 피드백을 담는 글이 아닌,
사랑하며 지낼 나의 각오를 다지는, 나를 향상시키고, 내 자존감을 높이고, 나를 위로하는 시간.
꼭 글이 아니여도 나를 사랑하는 시간으로 만들어보자.
콩심은데 콩나는 법이다. 행복한 마음속에서 행복이 더 자라고, 아이들도 더욱더 행복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