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4
허먼 멜빌 지음, 레이먼드 비숍 그림,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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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슈메일이라 불러다오. / p.37

최근 들어 가장 많이 언급된 동물을 하나 선택한다면 고래가 아닐까 한다. 얼마 전 종영한 인기 드라마의 영향으로 고래를 자주 듣게 된다. 강아지나 고양이는 워낙에 스테디라고 불릴 정도이므로 제외한다면 말이다. 고래에 대한 관심이 크게 없었는데 주위에서 고래를 주제로 이야기 나눌 기회가 많다 보니 드라마를 볼 생각까지 들었다. 아직 그 드라마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고래의 기역이 나오는 순간 침묵 상태에 이른다.

프로그램에서 등장하는 고래가 아닌 실물의 고래를 보게 된 것은 아마도 성인이 된 이후로 기억한다. 그동안 수족관이 있는 큰 동물원을 방문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살고 있는 지역에 아쿠아리움이 없었다. 그러다 몇 년 전에 같은 도내에 아쿠아리움이 생기면서 그때 처음 방문해 고래를 실물로 영접하게 되었다. 어린 아이처럼 감탄사만 내뱉었던 것 같다. 그게 현재 기준 처음이자 마지막 고래를 본 순간이었다.

이 책은 허먼 멜빌의 고전 소설이다.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래라는 공통 주제를 나누게 되면 무조건 나오는 소설이어서 언젠가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사실 책을 실물로 받자마자 어마어마한 두께에 잠시 갈등이 생기기도 했고,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요즈음 나름 뜨거운 소설 중 하나이기에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의 화자는 이슈메일로 고래를 위해 배를 타는 남자이다. 여관에서 식인종 부족의 작살잡이 퀴케그를 만난다. 야만인이라는 말에 고민을 했던 것도 잠시 이슈메일은 그와 함께 잠을 청했고 결국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둘은 고래잡이 배를 알아보던 중 피쿼드 호에 승선한다. 그곳에서 한쪽 다리가 없는 선장인 에이헤브, 항해사인 스타벅과 스터브 등의 선원들과 함께 고래잡이에 나선다.

각각의 승선한 이유는 달랐지만 에이헤브의 목적은 분명했다. 에이헤브는 모비 딕이라는 흰 고래에게 당해 한쪽 다리를 잃었는데 이를 복수하는 것이었다. 모비 딕을 향한 복수와 분노, 그걸 넘은 광기를 가진 인물이었다. 스타벅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피쿼드 호는 모비 딕을 사냥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사실 내용만 보면 일반 책 분량 정도면 충분히 서술하고도 남았을 것 같다. 읽는 내내 크게 두 가지의 갈래로 나누어 진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첫 번째는 모비 딕을 사냥하기 위한 이야기이다. 내용 안에 에이헤브의 광적인 집착과 다른 배들에게 모비 딕의 존재를 묻는 여정 등이 포함된다. 여정 속에서 아들을 찾는 선장, 에이헤브처럼 고래의 공격으로 팔을 잃은 선장의 모습들을 보면서 인간적인 안타까움과 함께 무언가에 미친듯이 집착을 하게 되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공감이 눈에 보이지도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꼈다. 식인종 부족의 퀴케그가 동료 선원을 목숨 바쳐 구하는 모습과 에이헤브의 매정한 모습은 상반되었다. 인간의 선악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고래잡이 이슈메일의 이야기이다. 모비 딕을 향한 여정에서 보면 화자가 이슈메일이기는 하지만 그냥 관찰자의 느낌으로 보였다. 모비 딕을 잡는 그 고군분투의 상황에서도 이슈메일이라는 이름 자체가 등장하지 않았다. 자신이 스스로 이슈메일이라고 밝히지 않는 이상 선원이나 다른 누군가가 이를 부르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아마 첫 문장이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았더라면 화자 이름도 모르고 읽을 뻔했다. 그만큼 바깥 배경으로는 존재가 없다고 느껴졌던 이슈메일이 전문가로서의 면모가 보이는 순간이 고래잡이와 고래에 대한 언급을 할 때이다.

모비 딕이라는 이 제목에 부제를 하나 붙인다면 <고래잡이 안내서>로 적고 싶다. 마치 고래 전문가인 것처럼 크기에 따라 고래를 분류하고, 고래의 습성과 고래잡이 어선의 구성 요소 등 전문가가 아니라면 알지 못했을 방대한 자료를 이야기한다. 모비 딕의 대부분의 분량은 여기에서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서 이슈메일이 항해사나 전문 직급을 달고 있는 선원이 아닌 말단 선원 중 한 사람인데 그만큼 고래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느껴졌다. 약간 의문을 하나 덧붙이자면 고래의 신비함을 말하면서 고래를 잡는다는 게 조금 개인적인 기준에서는 역설적으로 느껴지기는 했다.

철학, 신화, 종교, 역사 등 너무 광범위한 배경 지식이 등장해서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거기에 두께도 보통 읽는 소설의 두 권 정도 분량이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이러한 부담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고래잡이 소설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인간의 존재와 살아가는 이유, 삶 등 다양한 부분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다. 특히, 인간의 악으로서 칭하는 에이헤브와 인간의 선에 서는 스타벅의 구도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읽는 내내 모비 딕이라는 존재 자체가 의미하는 바를 고민했다. 개인적인 시각이지만 모비 딕을 "운명"이라고 생각했었다. 에이헤브는 자신이 반영되지 않는 운명을 이기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은 이를 거스를 수 없었다는 것이라고 보여졌다. 더 깊이 판다면 조금 안 맞는 부분도 있겠지만 말이다. 마지막 해제에서는 철학적, 사회적, 종교적, 심리적 등 다양한 의미로 등장하지만 아무래도 저자인 허먼 멜빌이 살았던 시대 배경 자체를 처음 접하다 보니 큰 해석보다는 스스로 구축한 존재가 더욱 와닿았던 것도 있다. 

인생 소설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끔 이슈메일이 떠오를 듯하다. 다방면의 지식이 쌓였더라면 더욱 크게 와닿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아쉬울 것 같다. 아마 그렇게 된다면 인생 소설이지 않았을까. 개인적인 아쉬움은 남지만 두께만큼이나 큰 여운이 남는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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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아일랜드 - 희귀 원고 도난 사건
존 그리샴 지음, 남명성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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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의 원고 도난 사건이라고 하니 소재부터 관심이 갑니다.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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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차가운 일상 와카타케 나나미 일상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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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무도 멈추지 않았나. / p.119

책의 제목인 나의 차가운 일상을 딱 처음 들었을 때 의문이 들었다. 반면, 바로 전에 읽었던 미스터리한 일상의 경우에는 이유로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일상에 발생했다는 것으로 너무나 당연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과연 차가운 일상이라는 것은 어떻게 피부에 와닿을 수 있을까. 겨울이어서 날씨가 추우니까 차가운 일상이라는 뜻인지 아니면 주변 사람이 쌀쌀맞게 대해서 마음이 차갑다는 뜻인지 등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차갑다는 말의 반대말인 뜨겁다로 보면 또 쉽게 의문이 풀린다. 사람들의 배려와 감동으로 마음이 뜨거운 순간을 떠올리면 되기 때문이다. 따뜻하다거나 뜨겁다는 말은 그래도 뭔가 익숙하게 느껴지는데 차갑다거나 춥다는 말은 왜 이렇게 괴리감이 드는지 모르겠다. 

이 책은 와카타케 나나미의 장편 소설이다. 바로 이전에 미스터리한 일상이라는 단편집을 읽었는데 나름 만족스럽게 읽었다. 또한, 초기 장편 소설이라고 하니 이것 또한 기대가 됐다.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제목 자체에서 주는 의문이 있었기에 왜 화자는 차가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는 화자 와카타케 나나미는 여행을 하던 중 기차에서 만난 한 이치노세 다에코라는 여성을 만난다. 다에코는 초반부터 남자 친구와의 대화로 나나미에게 큰 인상을 주었다.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다에코를 보면서 계속 시선을 두고 있었는데 이후 다에코가 나나미의 옆자리로 와 앉아도 되겠냐고 묻는다. 그렇게 다에코와 남자 친구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나나미와 하루를 같이 보낸다. 이후 크리스마스 이브에 같이 만나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하게 되었는데 다에코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나나미는 다에코의 자살 미수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하는데 그 과정에서 익명의 사람으로부터 하나의 수기를 받고, 또 다른 사람들의 죽음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수기의 경우에는 누나라고 칭하는 한 사람이 했던 극악무도한 범죄가 적혀 있었다. 나나미는 다에코가 자살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며, 수기를 보낸 사람과 수기의 주인공, 다에코에게 해를 가한 범인을 찾는다. 그렇게 하나는 다에코의 자살 미수 사건을 쫓는 나나미의 시각으로, 또 하나는 다에코의 시각으로 벌어진 회사에서의 사건들. 거기에 수기를 보낸 화자의 편지의 입장으로 소설에서는 크게 두 가지 사건과 세 가지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전개가 되는 듯하다.

처음에는 나나미의 행동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나나미에게 다에코가 크게 인상에 남았던 인물이기는 하지만 감정을 깊게 나눈 사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흔히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일인데 그 사람이 죽음의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이를 파헤칠 수 있는지 묻는다면 많이 망설이게 될 것 같다. 물론, 당시 그 상황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고 하면 바로 돕겠지만 말이다. 내가 느끼지 못했던 뭔가 감정의 교류가 있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범인들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친구라고 생각하는 다에코 자살 미수 사건의 퍼즐을 찾아가는 게 꽤 의문스러웠다.

거기에 나나미가 이렇게 다에코 자살 미수와 다에코의 직장에서의 살인, 수기의 주인 등 다양한 사건들을 파헤치는 게 탐정의 면모로서 다가간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에코의 일기나 주변 흔적들을 토대로 유추는 할 수 있겠지만 나나미는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친한 친구라고 속이면서 다에코의 회사 동기들이나 용의자들을 하나하나 인터뷰 또는 추궁을 하는 식으로 퍼즐을 맞춰 나간다. 보수만 받지 않을 뿐 누가 봐도 탐정이었다. 

개인적으로 수기를 보낸 화자의 편지가 가장 뇌리에 깊게 박혀 있었는데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하면 세기의 살인 사건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극악무도한 행동이었다. 초반에는 세상 사람들은 다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어긋난 신념과 어머니로부터의 학대로 반인격적적인 성향을 띄게 된 것에 인간으로서의 연민이 들기도 했었지만 중반으로 넘어갈수록 그야말로 악마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자신의 생물학적 지식을 활용해 흰독말풀로, 화학적인 지식을 토대로 비소로 독살을 하는 행동을 말이다. 보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던 부분도 있었는데 여성의 우정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의 이야기가 소설 전체를 관통하고 있으며, 등장 인물들의 말들을 통해 등장한다. 화자인 나나미 역시 여성의 우정은 그림의 떡과 같다고 표현하면서 진정한 우정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물론, 남자의 우정도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말이다. 순간 읽을 때에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남녀노소 깊게 마음을 나누는 우정은 있을 수 있는데 왜 이를 폄하하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나나미가 다에코를 위해 사건을 파헤치고 있다는 자체가 이를 반증하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무것도 아닌 우정으로 이렇게 동분서주를 하면서 친구에 대한 오해를 풀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나미가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친한 친구라는 거짓말을 하기에 이들이 느낄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나나미가 하는 행동과 말 자체가 우정이라는 게 하찮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듯했다.

바로 전에 읽었던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과 비교해 보면 이 소설이 더 내 스타일에 가까웠다. 미스터리한 일상에 비해 술술 읽히기도 했었고, 나나미의 시각에 이입되어 추리 소설 특유의 긴장감이 훨씬 더 잘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 이해의 장벽이었던 일본 문화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어서 더욱 만족감이 컸다. 단편 소설의 빠른 전개를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유독 차가운 일상에서의 조금 인물들의 빌드업이 나쁘지 않았다. 

제목의 차가운 일상이라는 뜻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지만 아무리 봐도 따뜻함이라는 게 지워지지 않는다. 인물들의 성격이 하나같이 시니컬하게 느껴져서 차가운 인상을 주기는 했지만 나나미의 시점만 놓고 본다면 은근한 뜨거움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차가운 일상이었기에 눈에 띄었겠지만 말이다. 인간의 악한 본성과 관계의 믿음을 동시에 와닿았던 소설이자 차가움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이야기를 보면서 와카타케 나나미 소설의 진수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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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와카타케 나나미 일상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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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 p.127

지금까지 살면서 미스터리를 겪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과거에 겪은 일을 깊이 생각하는 탓이 아니어서 그냥 넘기다 보니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가장 미스터리한 무언가를 뽑는다고 하면 내 존재 자체이지 않을까.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라는 생각을 가지게 될 때가 있는데 살아가면서 겪는 일 자체가 신기하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당연하면서도 평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마 다른 사람이라면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선택을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와카타케 나나미의 단편 추리 소설이다. 올해 초에 나왔던 3부작 시리즈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추리 소설로는 유명하신 작가님이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는데 그동안 기회가 닿지 않아 올해 안에는 읽겠다고 벼르던 참이었다. 그러다 초기작이었던 소설이 한국에서 발간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예전부터 꼭 읽고 싶었던 작가님의 소설이었기에 놓칠 수 없었다.

소설 전체를 이끌어가는 와카타케 나나미는 건설 컨설턴트 회사 편집부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사내 신문을 매월 발간하게 되면서 소설을 한 꼭지 실어야 한다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작가인 한 선배에게 이를 부탁한다. 선배는 힘들 것 같다고 거절하면서도 잘 아는 지인이 하나 있으니 연결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연결된 작가에게는 조건이 있었다. 익명으로 게시한다는 것. 고료는 와카타케 나나미가 보관할 것이며, 소설 또한 선배를 통해 전달이 된다는 것. 조금 당황스러울 법도 하지만 와카타케 나나미는 이를 수락했다. 그렇게 4월부터 시작해 매달 익명 작가의 소설 한 편씩 사내 신문에 들어가게 되고, 책에서는 총 열두 편의 소설이 나온다.

4월에 기재된 한 주인공의 벚꽃을 싫어하는 이유부터 3월에 기재된 제비꽃점으로 인한 이별 등 각 주인공들에게 소소하고도 평범한 일상이지만 조금은 이상하다고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개인적으로는 10월의 래빗 댄스 인 오텀, 12월의 소심한 크리스마스 케이크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래빗 댄스 인 오텀>은 한 아이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속 화자는 건강상의 이유로 긴 휴식을 가지게 되었고 마루야마 선배의 추천으로 한 회사에 아르바이트로 근무하게 된다. 그러던 중 같은 회사 편집장의 책상을 청소하다 낡은 달력 하나를 버린다. 치운 이후 미루야마 선배가 찾아와 달력의 소재를 물었다. 버렸다고 대답하자 거래처의 홍보부장과의 내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화자의 추리 능력이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이었다. 한두 가지의 단서를 가지고 바로 유추한 화자와 달력으로 편법을 쓰려고 했던 마루야마 선배의 행동 자체에 큰 대비가 느껴졌다. 아마 나였다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포기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심한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아라이라는 한 소녀와 다케시라는 한 소년의 이야기이다. 아라이가 어린 시절에 살고 있던 동네에는 주위에 이웃집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학생이 된 이후부터 하나둘 집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다케시 가족이 이사를 오게 된다. 다케시는 생물교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조금은 특이한 행동을 많이 했었는데 요리에도 소절이 있었다. 크리스마스에 아라이의 언니를 통해 다케시는 만든 케이크를 아라이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아라이는 별로 먹고 싶지 않았고 이는 임산부였던 언니가 먹었다. 먹고 난 이후 언니는 몸이 아팠으며, 이상하게 다음부터 다케시와의 연락이 끊기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내용이 가장 잘 이해되었던 소설이면서 첫사랑 생각이 들게 했다. 무엇보다 다케시의 사랑이라는 감정과 함께 죄책감까지 섞인 오묘한 마음이 와닿았다.

읽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가장 크게 들었다. 첫 번째는 익명 작가의 존재에 대한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열두 편의 주인공 중 어느 화자가 익명 작가인지 찾으면서 읽었다. 생각보다 겹치는 내용이 많아서 작가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추측도 했었다. 일을 쉬면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거나 누나에 대한 언급 등이 그랬다. 읽는 내내 작은 소설들의 이야기를 추리하는 것도 좋았지만 어느 부분이 익명 작가의 이야기를 녹였을지 추리하는 게 큰 재미이기도 했다. 마지막을 보니 생각했던 모든 추리가 허탕이라는 것에 조금 아쉬움을 느꼈다.

두 번째는 일본 문화가 짙은 소설이라는 생각이었다. 내용 자체는 흥미로웠지만 일본 문화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이해하는데 조금 애를 먹었다. <래빗 댄스 인 오텀>이라는 소설에서는 딸의 이름을 찾기 위한 힌트를 주는데 일본 지역에 대한 내용이, <봄의 제비점>에서는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은 익숙하지 않은 제비점이라는 주제가 등장한다. 그 외에도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에 일본어의 동음이의어 등이 등장하다 보니 찾으면서 읽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던 것 같다. 이는 옮긴 이의 말에서도 나왔기에 가장 크게 공감되었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익명 작가의 이야기에서 크게 뒷통수를 맞았다. 거기에 와카타케 나나미의 추리 능력에서 감탄했다. 나름 열두 편의 소설을 이으려고 노력은 했지만 각각 개별의 이야기이다 보니 이를 연결해 추리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퍼즐을 맞추고 나니 익명 작가의 존재가 의심할 여지도 없이 완벽하게 들어 맞았다. 물론, 와카타케 나나미 역시도 엉성한 구석이 있었지만 말이다. 

일본의 문화에 대한 장벽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추리도 만국 공통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제목 그대로 일상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일들이 새롭게 보였다. 코지 미스터리 여왕이라는 이름값을 느낄 수 있었던, 초기작의 매력이 돋보였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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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스카이
엘리자베스 콜버트 지음, 김보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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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인류세의 논리다. / p.56

요즈음 나도 모르게 하늘을 쳐다볼 때가 많다. 최근에 하늘을 보게 된 이유는 어느 순간부터 뭔가 별이나 달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밤에는 나갈 일이 많지 않다 보니 아침에 밖에 나오면 자연스럽게 푸른 하늘을 쳐다본다. 어제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었고, 오늘은 구름이 약간 있는 하늘이었다.

이 책은 엘리자베스 콜버트의 환경에 대한 도서이다. 환경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던 책이다. 거기에 인류는 더 이상 푸른 하늘을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문구가 시선을 끌었다. 오늘까지 보았던 이 푸른 하늘을 더 이상 못 본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환경의 위기는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너무 크게 와닿았기 때문에 경각심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저자가 환경에 대한 위기를 느꼈고 이를 위해 취재를 다녔던 미국 미시시피강부터 세계의 다양한 현장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이야기는 미시시피강의 아시안 잉어라고 불리는 물고기이다. 강의 흐름을 바꾼 시카고 운하를 건설한 이후 백련어로 불리는 아시안 잉어의 문제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과도하게 많아진 아시안 잉어를 전기 충격으로 기절을 시켜 활용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지만 개체 수가 줄어들지 않아 문제가 되었다. 거기에 미시시피강의 제방이 터진 크레바스라는 현상으로 큰 홍수가 생겼던 적도 있었다. 다른 나라인 호주에서는 수수두꺼비라는 독성을 가진 새로운 종이 생태계를 위협했다.

그러면서 수수두꺼비의 독성을 유전자로 줄이거나 없애서 조금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킨다거나 척박한 환경에서 더 잘 살아남을 수 있는 산호초를 만드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특히, 수수두꺼비에게 독성을 빼게 된다면 많은 생물들로부터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계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뭔가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책에 나오는 내용 자체가 아무래도 미국을 포함한 서양의 나라들이기 때문에 개념부터 모든 것이 생소했다. 그래서 쉽게 읽힐 수 없었다. 미시시피 강으로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시카고 운하의 자세한 배경이라든지 그린란드의 야콥스하운 빙류라든지 머릿속으로 그려지지 않아서 초반에는 읽는 내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사진으로 표시가 되어 있어서 이후에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읽다 보니 대한민국에서도 생태교란종이라고 불리는 동식물이 환경적인 이슈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특히, 배스라는 물고기가 토종을 위협하면서 이를 식품으로 만들어 먹을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았던 것 같다. 아시안 잉어의 경우에는 수요 자체가 없다 보니 비료로 사용한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이렇게 와닿을 수 있도록 바꾸어서 생각하다 보니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 읽었던 환경에 대한 도서나 이야기들은 전부 가정에서 전기를 줄인다거나 대중교통을 적게 이용하는 등의 개인적인 측면이었다. 또한, 빙하의 해수면이 오르거나 지구의 온도가 오르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신선했다. 아무리 이러한 노력을 한다고 해도 환경은 변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했다. 아예 안 쓰면 모르겠지만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며, 한다고 해도 환경 파괴가 늦어지는 정도일 뿐 아예 멈추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런 시각과 내용에 큰 공감이 되었다. 거기에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 내용들도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많이 어려웠던 책이었지만 저자가 그리고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강렬했고 완벽했다. 덕분에 환경에 대해 더욱 더 깊이 고민했던 시간이었다. 더불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도 느낄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다. 환경을 조금 더 다른 차원으로 고민하고자 노력하는 독자들에게는 좋은 도서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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