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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무삭제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44
허먼 멜빌 지음, 레이먼드 비숍 그림,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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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슈메일이라 불러다오. / p.37
최근 들어 가장 많이 언급된 동물을 하나 선택한다면 고래가 아닐까 한다. 얼마 전 종영한 인기 드라마의 영향으로 고래를 자주 듣게 된다. 강아지나 고양이는 워낙에 스테디라고 불릴 정도이므로 제외한다면 말이다. 고래에 대한 관심이 크게 없었는데 주위에서 고래를 주제로 이야기 나눌 기회가 많다 보니 드라마를 볼 생각까지 들었다. 아직 그 드라마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고래의 기역이 나오는 순간 침묵 상태에 이른다.
프로그램에서 등장하는 고래가 아닌 실물의 고래를 보게 된 것은 아마도 성인이 된 이후로 기억한다. 그동안 수족관이 있는 큰 동물원을 방문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살고 있는 지역에 아쿠아리움이 없었다. 그러다 몇 년 전에 같은 도내에 아쿠아리움이 생기면서 그때 처음 방문해 고래를 실물로 영접하게 되었다. 어린 아이처럼 감탄사만 내뱉었던 것 같다. 그게 현재 기준 처음이자 마지막 고래를 본 순간이었다.
이 책은 허먼 멜빌의 고전 소설이다.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래라는 공통 주제를 나누게 되면 무조건 나오는 소설이어서 언젠가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사실 책을 실물로 받자마자 어마어마한 두께에 잠시 갈등이 생기기도 했고,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요즈음 나름 뜨거운 소설 중 하나이기에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의 화자는 이슈메일로 고래를 위해 배를 타는 남자이다. 여관에서 식인종 부족의 작살잡이 퀴케그를 만난다. 야만인이라는 말에 고민을 했던 것도 잠시 이슈메일은 그와 함께 잠을 청했고 결국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둘은 고래잡이 배를 알아보던 중 피쿼드 호에 승선한다. 그곳에서 한쪽 다리가 없는 선장인 에이헤브, 항해사인 스타벅과 스터브 등의 선원들과 함께 고래잡이에 나선다.
각각의 승선한 이유는 달랐지만 에이헤브의 목적은 분명했다. 에이헤브는 모비 딕이라는 흰 고래에게 당해 한쪽 다리를 잃었는데 이를 복수하는 것이었다. 모비 딕을 향한 복수와 분노, 그걸 넘은 광기를 가진 인물이었다. 스타벅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피쿼드 호는 모비 딕을 사냥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사실 내용만 보면 일반 책 분량 정도면 충분히 서술하고도 남았을 것 같다. 읽는 내내 크게 두 가지의 갈래로 나누어 진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첫 번째는 모비 딕을 사냥하기 위한 이야기이다. 내용 안에 에이헤브의 광적인 집착과 다른 배들에게 모비 딕의 존재를 묻는 여정 등이 포함된다. 여정 속에서 아들을 찾는 선장, 에이헤브처럼 고래의 공격으로 팔을 잃은 선장의 모습들을 보면서 인간적인 안타까움과 함께 무언가에 미친듯이 집착을 하게 되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공감이 눈에 보이지도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꼈다. 식인종 부족의 퀴케그가 동료 선원을 목숨 바쳐 구하는 모습과 에이헤브의 매정한 모습은 상반되었다. 인간의 선악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고래잡이 이슈메일의 이야기이다. 모비 딕을 향한 여정에서 보면 화자가 이슈메일이기는 하지만 그냥 관찰자의 느낌으로 보였다. 모비 딕을 잡는 그 고군분투의 상황에서도 이슈메일이라는 이름 자체가 등장하지 않았다. 자신이 스스로 이슈메일이라고 밝히지 않는 이상 선원이나 다른 누군가가 이를 부르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아마 첫 문장이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았더라면 화자 이름도 모르고 읽을 뻔했다. 그만큼 바깥 배경으로는 존재가 없다고 느껴졌던 이슈메일이 전문가로서의 면모가 보이는 순간이 고래잡이와 고래에 대한 언급을 할 때이다.
모비 딕이라는 이 제목에 부제를 하나 붙인다면 <고래잡이 안내서>로 적고 싶다. 마치 고래 전문가인 것처럼 크기에 따라 고래를 분류하고, 고래의 습성과 고래잡이 어선의 구성 요소 등 전문가가 아니라면 알지 못했을 방대한 자료를 이야기한다. 모비 딕의 대부분의 분량은 여기에서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서 이슈메일이 항해사나 전문 직급을 달고 있는 선원이 아닌 말단 선원 중 한 사람인데 그만큼 고래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느껴졌다. 약간 의문을 하나 덧붙이자면 고래의 신비함을 말하면서 고래를 잡는다는 게 조금 개인적인 기준에서는 역설적으로 느껴지기는 했다.
철학, 신화, 종교, 역사 등 너무 광범위한 배경 지식이 등장해서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거기에 두께도 보통 읽는 소설의 두 권 정도 분량이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이러한 부담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고래잡이 소설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인간의 존재와 살아가는 이유, 삶 등 다양한 부분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다. 특히, 인간의 악으로서 칭하는 에이헤브와 인간의 선에 서는 스타벅의 구도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읽는 내내 모비 딕이라는 존재 자체가 의미하는 바를 고민했다. 개인적인 시각이지만 모비 딕을 "운명"이라고 생각했었다. 에이헤브는 자신이 반영되지 않는 운명을 이기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은 이를 거스를 수 없었다는 것이라고 보여졌다. 더 깊이 판다면 조금 안 맞는 부분도 있겠지만 말이다. 마지막 해제에서는 철학적, 사회적, 종교적, 심리적 등 다양한 의미로 등장하지만 아무래도 저자인 허먼 멜빌이 살았던 시대 배경 자체를 처음 접하다 보니 큰 해석보다는 스스로 구축한 존재가 더욱 와닿았던 것도 있다.
인생 소설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끔 이슈메일이 떠오를 듯하다. 다방면의 지식이 쌓였더라면 더욱 크게 와닿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아쉬울 것 같다. 아마 그렇게 된다면 인생 소설이지 않았을까. 개인적인 아쉬움은 남지만 두께만큼이나 큰 여운이 남는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