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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메이커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박현주 옮김 / 소소의책 / 2026년 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베네치아와 무라노처럼, 유리도 자기만의 속도가 있죠. / p.7
이 책은 트레이시 슈발리에라는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진주 귀고리 소녀> 작품이 꽤 유명한 작품으로 알고 있다. 나에게는 파란색 옷에 눈에 띄는 진주 귀고리를 한 여성 그림이 떠오르는데 주변 지인들로부터 작품에 대한 호평을 들었다. 언제 시간이 된다면 꼭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최근에 신작 발간 소식을 접했다. 거기에 여성 화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이 생겨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오르솔라라는 인물이다. 오르솔라는 유리 섬 무라노에 사는 중이다. 무라노는 다른 세계와는 조금 다르게 흘러가는 듯하고, 그녀가 하는 유리 공예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여성인 오르솔라가 원칙적으로 유리 공예를 할 수 없음에도 돌아가신 아버지와 가업을 이을 수 없는 오빠를 대신해 결국 금녀의 영역으로 드러서게 된다. 긴 시간동안 오르솔라와 유리 공예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술술 읽혀졌던 작품이었다. 두꺼운 페이지를 가진 소설이어서 초반에 걱정이 되었다. 언급한 것처럼 주변에서 호평을 듣기는 했지만 직접 읽게 된 것은 처음이었던 작가님의 소설이라는 점도 역시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 생각이 무색하게도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었다. 520 페이지가 조금 넘는 작품이었는데 이틀에 걸쳐 완독할 수 있었다. 서사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지점이 매력적이었다. 첫 번째는 시간의 흐름이다. 이 소설은 다른 작품들과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보통 시간이 흐른 것을 주인공의 변화로 인지할 수 있다. 직접적으로 주인공의 나이가 들거나 외모나 상황이 시대에 맞게 바뀌는 식이다.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오르솔라, 그리고 무라노는 바깥의 시간과 다르게 멈춰져 있다. 분명 연도는 바뀌어져 가지만 그들은 그대로 있다는 점이 독특하게 다가왔다.
두 번째는 여성의 도전이다. 사실 그동안 많은 소설에서 여성이 금녀의 영역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많이 읽었다. 이 작품 역시도 그렇다. 유리 공예 하면 자연스럽게 여성이 떠오르는 직종이라고 생각했는데 소설에 등장하는 무라노라는 도시, 그리고 그 시기의 유리 공예는 남성만이 할 수 있는 하나의 전유물이었다. 그 안에서 편견과 압박, 차별을 깨고 유리 공예를 이어가는 오르솔라의 모습이 또 새삼스럽게 와닿았다.
전체적으로 서사가 크게 와닿았던 작품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서사가 있으면 좋지만 조금 부족하더라도 필력으로도 만족감을 느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서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역시 소설은 서사의 맛이다. 읽는 내내 오르솔라가 되었고, 무라노의 가운데 관전자로 그곳을 바라보았던 시간이었다. 이해보다는 감성적으로 먼저 닿았던 작품을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