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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은 계절보다 늦게
오윤희 지음 / 리프 / 2026년 10월
평점 :


그렇다면 지금 자신을 찾아다니는 그 남자는 대체 누구일까. / p.25
나에게 작별은 애정 관계의 누군가와 헤어지는 일보다는 가족과 친구 등의 사심이 없는 관계에서 떠나는 일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최근에는 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신 일이 될 것이고, 학창시절에는 친한 친구와 반이 떨어지는 정도일 것이다. 사실 그렇게 큰 의미를 두는 편은 아니라 기억하지 못하는 일도 있을 것이. 그럼에도 작별이라는 단어는 늘 쓸쓸하고 슬픈 어감을 지닌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별하는 이들이 등장하는 이 책은 오윤희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지금까지 작가님의 작품 두 편을 읽었는데 분위기가 아예 다른 결이어서 기억에 남았다. 처음에 읽었던 <영숙과 제이드>는 모녀 관계의 이야기를 다룬 따뜻한 작품이었고, 두 번째로 읽은 <금붕어 룰렛>은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 장르의 차가운 작품이었다. 이번에 읽게 된 신작은 전자에 가까운 결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름 기대를 가지고 페이지를 넘겼다.
소설의 주인공은 러시아에서 살고 있는 고려인 소냐라는 인물이다. 그녀에게는 다정한 남편과 발레에 재능 있는 딸이 있다. 어느 날, 소냐를 찾는 동양인 남자가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남편 역시 유령을 본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을 찾는 의문의 인물이 궁금했던 소냐는 결국 그와 마주하게 된다. 그는 25년 전, 소냐의 애인이었던 영호였던 것이다. 그는 세월이 흐른 지금, 왜 소냐를 찾아온 것일까.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술술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등장인물들의 특성상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사람이 온전히 공감하기에는 거리가 느껴졌지만, 스토리 자체는 쉽게 이해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북한 국적의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조해진 작가의 <로기완을 만났다>와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라는 점에서 양귀자 작가의 <천 년의 사랑>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두 작품을 좋아했던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소냐가 겪었던 이방인의 삶이 인상적이었다. 소냐는 고려인이기는 하지만, 대한민국보다는 러시아에 살았던 시간이 더 많았다. 러시아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의사소통에도 크게 문제가 없다. 그럼에도 동양인의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신분증을 검사하는 일이 잦은 편이었는데, 남편은 소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러시아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이야기가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가끔은 참혹하고도 잔인한 현실이 아름다움으로 보이기도 한다. 영호와 소냐의 사랑 이야기가 그렇다. 두 사람을 이어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방인이라는 그 외로움과 쓸쓸함이었다. 그들에게 고통은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수단이자 감정을 키워나가게 해 주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이들의 사랑을 현실처럼 냉혹하게만 바라보기에는 하얀 눈밭에 피어난 한 송이 동백처럼 애틋하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