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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묘묘 부동산 ㅣ 기기묘묘
박혜연 지음 / 다산책방 / 2026년 10월
평점 :


그 순간 우연히 내린 변덕스러운 결정이 모든 구원의 시작이었음을. / p.260
누군가 행복을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할 듯하다. 살면서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낀 적이 거의 손에 꼽는다. 그것도 서른이 넘은 이후에 체감하게 되었다. 행복을 소소한 것에서부터 찾아야 한다는 여러 이야기를 들었지만, 어디까지나 머릿속으로만 기억할 뿐이다. 그게 막상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스스로 불행하냐고 여기느냐고 묻는다면 그것 또한 아니다. 이 정도로 살아가는 것은 꽤나 만족스러운 일이다. 적어도 나에게 행복과 불행은 반의어가 아니다.
인생의 행운을 되묻는 이 책은 박혜연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전작이었던 <기기묘묘 방랑길>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그런데 좀처럼 기회가 닿지 않아 여유가 생길 때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우연히 기기묘묘의 새로운 시리즈가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SNS로 접했다. 전작을 건너뛰고 신작부터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선택했다. 요즈음 인류애가 사라지는 작품들만 읽었던 터라 기대감을 가지고 페이지를 넘겼다.
소설의 주인공은 연준이라는 인물로,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었다. 혈혈단신으로 어렵게 살아가던 연준은 어려울 때 찾아오라고 했던 스님을 만나기 위해 절로 향한다. 그곳에서 주지 스님의 공격을 받고, 죽음의 문턱에서 단야를 만난다. 단야는 연준의 목숨을 구해 줄 뿐만 아니라, 그가 '귀구 부동산'에서 숙식을 제공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 부동산의 유일한 인간 연준이 괴이들과 부딪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금 어렵게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줄거리를 따라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지만 인물과 사건, 그리고 이들이 공유하는 세계관을 머릿속에 그리느라 속도가 더디게 흘러갔다. 특히, 우리가 아는 부동산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한다는 설정에서 판타지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한국 특유의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세계관을 지니고 있는 판타지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연준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그가 처한 상황은 누가 봐도 불행하다고 할 만큼 안타까웠다. 부모님을 잃은 것만으로도 충격이었을 텐데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다. 단야에게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는 대목에 공감이 갔다. 어두운 상황에 비해 경쾌하고도 밝게 그려졌다는 게 신선했다. 오히려 우울하게 그려졌다면 몰입이 어려웠을 것 같다.
행운과 불운. 우연히 깐 봉지에서 사탕 두 개가 나올 때 행운을 느끼는 것보다 갑자기 끼어든 차량에 불운을 경험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인지 인간은 본능적으로 행운을 쫓기보다는 불운을 찾는 데 더 익숙한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마저 든다. 두 단어 사이의 거리는 어느 정도 될까. 이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되짚어 생각하다 보면, 그렇게 멀지는 않은 듯하다. 연준이 불운 속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듯, 불운의 먹구름 사이로 행운의 뭉게구름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