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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짐승들
저스틴 토레스 지음, 김진준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더 많은 살, 더 많은 피, 더 많은 온기를 원했다. / p.12
소설에도 질감이 있을까. 실제로 만져지는 것도 아닌데, 활자를 읽을 때마다 마치 손끝에 닿는 듯하다. 실크처럼 부드러운 문장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거친 사포 그 자체인 문장도 있다.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감각이어서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다른 후기들을 접해 보면 비단 나만의 느낌은 아닌 듯하다. 독자인 나에게도 참 신기한 일이다. 눈으로 읽는 시각적인 글이 어떻게 손끝의 촉각으로 남는지 책장을 덮고도 생각하게 된다.
표지에서부터 거친 느낌을 주는 이 책은 저스틴 토레스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처음에는 줄거리를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줄거리에 끌려 읽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예전에 다른 소설로 만난 작가였다. 성적 변종을 연구하던 인물과 한 노인의 이야기를 담은 <암전들>이라는 작품이었다. 난해했지만, 소설의 형식이 형식이 워낙 독창적이어서 인상 깊게 남았다. 작가의 초기작이라는 소식을 듣고 더욱 기대가 되었다.
소설의 화자는 푸에르리코 이민자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셋째이자 막내아들이다. 어린 나이에 세 아들을 낳은 어머니와 충동적인 아버지 아래에서 폭력에 노출된 채 불안정하게 자란다. 바깥에서 보면 영락없는 문제아 가족이다. 폭풍처럼 문제 행동을 일삼지만, 정작 이들은 행복하기만 하다. 시간이 흘러 화자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깨닫고, 스스로가 짐승임을 자각하게 된다.
조금 어렵게 다가온 작품이었다.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파편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인상적인 사건과 일화를 하나씩 보여 주는 형식이라, 한 장면씩 포착한 사진첩을 넘기는 기분이었다. 초반에는 이 느낌이 낯설게 다가와 페이지가 더디게 넘어갔는데, 화자의 서사에 빠져들고 난 뒤부터는 확실하게 몰입할 수 있었다. 배경이나 분위기보다 화자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독서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부모의 역할을 생각하면서 읽었다. 화자를 포함한 삼형제의 성장 환경은 몹시 열악했다. 아버지는 가죽 벨트로 아이들의 뺨을 때렸고, 어머니는 자신의 우울을 아무렇지 않게 자녀들에게 투사했다. 게다가 두 사람은 경제적 능력조차 없는 어른이었다. 버지의 폭력을 그대로 장난으로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섬뜩했다. 스치고 지나가면서 들었던 아이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과연 이들 가족은 짐승이었을까. 분명 부모는 양육할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었고, 아이들 또한 모범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회가 말하는 정상 가족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법한 부모와 자녀였는데, 활자 너머 느껴진 모습은 이상하게 행복해 보였다. 그렇게 모진 폭력과 지긋지긋한 가난과 싸우면서도 이들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문체만큼이나 거친 유년의 상처가 묘하게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