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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달금전
서귤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대감 나리 손아귀에 금은보화가 부족하겠느냐마는, 원래 가진 놈이 더한 법이라. / p.8
과연 조선시대로 돌아간다면 나는 무슨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을까. 아니, 어떤 서민이었을까. 지금과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조금의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면 그 시대의 내 모습이 궁금증이 생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아낙네 중 한 사람이었을 것 같다. 사실 국가나 가정보다는 개인의 삶을 우선하는, 그 시대에는 드문 여성. 아마 서른이 넘도록 혼례를 올리지 않은 '노처녀'가 딱이다.
조선시대의 비범한 여성들이 등장하는 이 책은 서귤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예전에 인터넷 서점 소개 페이지에서 종종 표지만 보았을 뿐, 작가님의 작품은 처음 읽게 된다. 지인으로부터 <삼국평화고등학교 테러 사건>이라는 작품의 후기를 들었던 기억은 있다. 그럼에도 평소 소설 취향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해 애써 외면했다. 이번 신작 소식을 접하면서 줄거리가 흥미로워서 선택하게 되었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가 등장하는 조선 말기다. 명성황후를 보좌할 수 있는 여성 궁녀를 선발하기 위해 팔도의 기가 센 여성들이 한양으로 올라온다. 그 중 꼴찌로 도착한 채달금의 시선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채달금은 말솜씨와 잔머리가 특기인 막내이다. 가끔 스스로 위험에 빠지지만, 그 역시 나름의 능력으로 해결한다. 채달금은 명성황후의 호위 궁녀가 될 수 있을까.
술술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가장 큰 특징은 판소리를 닮은 문체다. 나도 모르게 노래 가사처럼 중얼거리게 될 정도로 활자 안에서 리듬이 느껴진다. 이건 분명히 낯설지만, 그만큼 흥미로웠다. 전반적으로 흐름이 다이내믹하고 전개 속도도 빠른 편이다.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가볍고도 유쾌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장단에 따라 맞춰 읽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채달금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역사 교과서에서 익히 접한 김옥균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질문을 던지고, 다른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자기 의견과 행동을 멈추지 않는 당당함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가끔 채달금의 행동이나 생각에서 답답한 지점들이 있었지만, 몰입해서 읽다 보니 그것조차 금방 잊어버렸다.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이다. 나중에는 정이 든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이들은 보통 사람보다 힘이 세고 머리가 좋지만, 그렇다고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영웅은 아니다. 오히려 가끔은 엉뚱하거나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것은 누가 위협해도 절대 꿇리지 않는 기세와 누구보다 자신들의 능력을 믿는 자존감에 있었다. 개성 강한 여성들이 벌이는 요란하지만 사랑스러운 활극.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역시 인생은 기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