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흔
데라오 데쓰야 지음, 김소희 옮김 / 드롬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세계는 고통 없이, 오직 즐거움만으로 채워질 수 있을까? / p.15

​

어느 순간부터 책을 다 읽고 나면 한동안 느낀 것들에 대해 깊이 곱씹게 된다. 예전에는 없던 습관이었다. 휘발되더라도 그냥 덮고 곧바로 다른 작품을 골라 읽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잠깐이나마 '내가 왜 이 감정을 느꼈지?', 또는 '이런 생각이 왜 드는 거지?' 하고 스스로 묻고 답해 보는 시간을 가진다. 아마도 이렇게 독서 기록을 남기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인 듯하다. 그렇다고 독서 기록에 '남는 것 없음'이라고 적을 수는 없지 않을까.

​

유독 곱씹는 시간이 길었던 이 책은 데라오 데쓰야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작가 이름만 보고 당연히 일본 작품일 줄 알았다. 그런데 추천사는 다 중화권의 작가나 전문가의 글이었다. 다시 확인해 보니 일본식 필명을 쓰는 타이완 작가의 소설이었다. 처음에는 이름에 대한 순수한 궁금증으로 끌렸고, SNS에서 읽은 후기들 때문에 더욱 관심이 생겨서 선택하게 되었다. 기대감과 걱정을 가지고 페이지를 넘겼다.

​

소설집에는 아홉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각각의 이야기를 관톨하는 인물이 하나 있다. 바로 제헝이다. 그는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좋은 회사에 취직하게 된다. 남부러울 것 없는 제헝에게는 누구에게도 터놓을 수 없는 감정과 생각들이 자리한다.끈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되묻고, 학창 시절에 겪었던 불완전한 기억들을 되새기며 고통스러워하고, 타인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시험한다. 과연 제헝은 나를 찾아갈 수 있을까.

​

조금 어렵게 다가온 작품이었다. 단편집이지만, 연작소설집 또는 장편소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서사를 따라가면 이야기의 흐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자극적이거나 불편한 지점이 있어서 책장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특히 초반부에 등장하는 장면은 다 읽은 이후에도 머릿속에 맴돌았다. 전반적으로 수위가 높은 편이어서, 이러한 묘사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

개인적으로 읽는 내내 허무감이 짙게 느껴졌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직장인, 제헝은 겉으로 보기에 멀쩡하다. 아니,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배경을 지닌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속은 우울하고 어둡기만 하다. 제헝의 생각과 감정들이 마치 손에 잡히지 않는 모래처럼 느껴졌다. 비슷한 또래의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허무감과 닿아 있지 않을까.

​

'허무감'으로 페이지를 넘겼지만, 결국 마지막에 남는 감정은 '불쾌감'이었다. 이 불쾌감은 어디에서 왔을까. 물론 제헝이 학창 시절 친구인 우이샹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활자로 마주한 자세한 묘사나 제헝에게서 느낀 우울감이 불쾌한 감정으로 남았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찝찝함이 생각보다 깊고 오래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