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판박이
아베 코보 지음, 곽형덕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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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컨대 거스르는 것이 무서웠을 뿐이잖습니까.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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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발을 붙이고 있으면서도 종종 시간이나 공간을 뛰어넘는다는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지금 내가 있는 곳, 그리고 하고 있는 행동이 현실이 아닌 것 같은 불쾌한 경험이다. 뭔가 말로 형용하기 힘든 이 느낌이 '데자뷰'라는 것을 성인이 되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심지어 나에게만 해당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감이 좋은 인간들이라면 자주 겪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혼란을 주는 데자뷰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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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가상을 뒤틀리게 만드는 이 책은 아베 고보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요즈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우스갯소리로 '입덕부정기'라고 표현하는 편이다. <모래의 여자>를 읽고 너무 불호였어서 다시는 읽고 싶지 않았는데, 계속 잔상이 남았다. 그리고 다른 작품을 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 접한 <타인의 얼굴>은 그 기분이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마치 끊을 수 없는 중독 같았는데, 이번 신작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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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화자는 '안녕하세요 화성인'이라는 이름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작가다. 한때 인기를 얻었으나, 화성 탐사선이 발사된 이후로 자리가 위태한 상황이다. 그때 자신이 화성인이라고 주장하는 한 남자가 그를 찾아온다. 당최 믿을 수 없는 화자는 남자를 의심했고, 남자는 논리적인 언변으로 화자의 말에 반박했다. 과연 남자가 화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화자를 찾아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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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어렵게 읽었던 작품이었다. 아베 고보 작가의 문체는 쉽게 손에 잡히는 스타일은 아니다. 전체적인 문장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은유적으로 돌려서 구사한다. 비교적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문장 자체는 눈에 들어오지만, 제 버릇 남 못 준다는 속담처럼 은유의 밀도는 여전히 중상, 아니 그 이상이다. 문장 하나하나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꽤 길었다. 문장을 비틀거나 곱씹어서 의미를 파헤치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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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인간과 화성인의 차이에 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화자와 남자의 설전에서 드러나는 부분이다. 남자는 화성인을 '인간 판박이'라고 표현한다. 물론, 초반에는 겉모습이 비슷하다는 의미로 사용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행동과 생각, 감정도 두 개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독자로 하여금 인식하게 만든다. 후반부에 화자가 남자에게 지리멸렬한 사내라고 하는데, 이는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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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은 그저 까마득하다. 갈 생각도 없지만, 앞으로 갈 일도 없는 사람으로서 그곳에 외계인이 있을지 과학자가 밝혀주지 않는 이상 평생 모르고 살아갈 것이다. 화성인과 지구인은 같은 종족일까. 화성인의 주장처럼 인간 판박이일까. 아베 고보 작가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SF 소설이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인간을 탐구하는 사회학 소설로 읽혀졌다. 이들의 이야기에서 허구와 현실을 넘나드는 혼란스러움이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머릿속을 어지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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