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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볼버
하라다 마하 지음, 강영혜 옮김 / 북스피어 / 2026년 8월
평점 :


행복해 보이는 타히티 소녀. 미래에서 사에를 기다리고 있는 그림 한 점. / p.13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는 허구의 소설은 가상의 세계를 접하는 것과 느낌이 다르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지만, 다른 나라의 역사는 알지 못하는 채로 시작하게 될 때가 많다. 이게 과연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작가의 세계에서 상상되어 구현된 일인지 혼란스러움이 묘하다. 살아가면서 혼란은 극도로 경계하는 사람 중 하나이지만, 소설 안의 세계는 얼마든지 환영이다.
고흐라는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하는 이 책은 하라다 마하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미술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지만, 빈센트 반 고흐라는 화가는 나름 친숙한 편이다. 스스로 귀를 잘랐던 일화나 교과서에서 자주 접했던 그의 작품들을 기억하고 있다. 고흐라는 역사적 인물보다 사실에 기반한 역사 소설이라는 장르에 끌려 이 책을 선택했다. 거기에 출판사에 대한 전적인 신뢰는 덤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예술품 경매 회사에서 근무하는 사에다. 미술사를 전공해 미술 작품들을 주로 보는 사에에게 사라라는 이름을 가진 한 여성이 찾아오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라는 조심스럽게 가지고 있던 리볼버 총을 하나 꺼낸다. 사라의 말에 따르면, 그 총은 고흐가 자신을 쏘았던 바로 그 총이었다. 사에와 회사 직원들은 사라가 가지고 온 리볼버가 진품인지 감정하는 동시에 고흐의 과거를 다시 들여다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실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는 미술에 전혀 지식이 없다는 점이 걱정되었다. 고흐가 친숙하기는 해도 남들이 아는 상식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과연 미술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는데, 그 걱정이 무색할 만큼 쉽게 읽혀서 오히려 머쓱했다. 역사를 다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리볼버의 진위를 파헤치는 동안 고흐의 삶이 드러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사에와 동료들은 사라가 꺼낸 리볼버가 과연 그게 그 역사적인 사건의 중심에 놓인 총이 맞는 것인지 의심했다. 물론, 고가의 예술품이라는 점에서 진실을 증명하는 것은 필요한 일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총 자체의 이야기보다는 고흐의 생애를 단서로 삼아 이를 증명해 나가는 부분이 신기하면서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덕분에 몰랐던 고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역사를 따라간다는 것은 언제나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인생을 마치 새로운 풍경을 보듯 거닐게 되는 여정이나 다름이 없다. 사에는 업무를 위해 고흐의 과거에 들어가게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녀의 눈으로 본 고흐의 여정이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고흐의 예술을 향한 열정, 인생의 한가운데에서 느꼈을 고통까지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저 화가로만 알던 고흐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