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전하는 자들의 나라
황모과 지음 / &(앤드)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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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상은 나아지고 있을까. 나빠지지만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 p.160

SKY를 가지 않으면, 아니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지 않으면 마치 인생을 실패한 것처럼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선생님께서도 그곳을 가면 앞으로의 삶이 꽃길만 펼쳐질 것이며, 지방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면 고통받을 것처럼 겁을 주셨다. 공부에는 재능이 없었던 나는 결국 집이 있는 지역 소재의 사립대학교를 나왔는데 결론적으로는 너무나 잘 살고 있다. 그렇게 불안했던 시간들이 지금 돌이켜보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문이 든다.

원하는 대학교에서 예비 1번으로 탈락하는 꿈을 꾸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되는 이 책은 황모과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관동대지진을 소재로 한 역사 타입슬립 소설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 사회적으로 조명되어야 하는 인물들을 다루었던 단편소설집 <스위트 솔티>, 자아의 중심에 대한 의문을 던졌던 장편소설 <노 바디 인 더 미러>에 이르기까지 읽었던 모든 작품들이 인상적으로 남았기에 이번 신작도 기대를 가지고 페이지를 넘겼다.

소설의 주인공은 효린으로 명문대인 S대를 목표를 가진 학생이다. 수능 시험 전날, 불길한 꿈을 꾸었다. 그 불길한 예감은 곧 현실이 되었다. 불과 문제 하나 차이로 떨어졌고, 예비 35번을 받은 것이다. 이후 합격자 친구들이 죽는 일이 발생하고, 결국 한 사람을 앞두고 최종 불합격 처리를 받았다. 그런데 그 일이 다시 반복되고 있다. 매일 예비 1번으로 번번이 미끄러지고 있는 것이다. 과연 효린은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조금 어렵게 다가왔던 작품이었다. SF 장르의 특성상 세계관이 낯설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였다. 효린뿐만 아니라 같이 등장하는 엄마 역시도 계속 같은 일이 반복되는 타임루프 설정 때문에 초반에는 혼란스러웠다. 어느 정도 눈에 익고 난 이후부터는 완벽하게 몰입할 수 있었다. 세계관은 낯설었지만 스토리 자체는 비교적 단순한 편이어서, 청소년 소설을 좋아하거나 가볍게 읽을 소설을 찾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인물들에게 느껴지는 인간의 이기심이 인상적이었다. 효린은 S대에 합격하는 친구들이 연이어 죽게 되었을 때에도 친구에 대한 애도보다는 예비가 줄어드는 것을 더욱 먼저 생각했다. 또한, 효린의 할아버지이자 유진의 아버지인 강 순경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선택을 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법한 알량한 생각과 잔인한 행동이었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일말의 공감이 되었다는 점에서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원인과 결과를 떠나 인간은 각자의 세계를 공전하는 중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새로운 일의 연속이지만, 멀리에서 보면 결국 쳇바퀴와 같은 비슷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마치 매일 예비 1번의 실패를 경험하는 효린과 경제적인 어려움 안에서 효린을 양육했던 유진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낯선 세계관 안에서 동질감이 느껴졌다. 공전을 멈추게 된 세계 안에서 효린과 유진은 행복했을까. 아직도 쳇바퀴를 돌고 있는 우리는 행복한가. 묵직함이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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