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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얼굴
아베 코보 지음, 이정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6년 7월
평점 :


당신은 내 가면을 가면으로 알아차렸으면서 그대로 계속해서 속은 체하고 있었다니. / p.322
한때 스스로를 숨기기는 잘하지만, 거짓말은 안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타인에게 가타부타 내 상황이나 심정을 구구절절 이야기하지는 않는 편인데, 누가 묻는다면 가식 없이 대답하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다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런 생각들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억울하고 분한 일이 있더라도 억지로 웃으면서 괜찮다는 말을 건넨다. 가면을 착용하는 것이 참 싫지만,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인간이 가진 가면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아베 코보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불과 몇 개월 전에 대표작인 <모래의 여자>라는 작품을 읽었다. 당시에는 여성을 그리는 방식이나 전반적인 분위기가 참 찝찝하고 불쾌하게 다가왔다. 다시는 이 작가의 소설은 읽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는데 묘하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이야기가 계속 떠오르는 경험을 하고 있다. 이번에 신작 소식을 접하면서 관심이 생겨 읽게 되었다.
소설의 화자는 액화 질소 폭발 사고로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게 된다. 얼굴이 온통 켈로이드 자국으로 가득한 것이다. 손상된 얼굴을 되살려 줄 전문가들을 찾아가 인간과 같은 피부의 가면을 제작하기로 한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치 누군가에게 편지를 적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첫번째는 가면을 제작하기로 한 여정, 두번째는 착용하게 된 과정과 주인공의 심경, 마지막 노트는 맨얼굴과 가면 사이의 갈등을 그린다.
꽤 어려운 작품이었다. 우선, 1인칭 자기 고백의 서간체 형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흐름을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웠다. 거기에 직설적이기보다는 은유적으로 돌려서 표현하는 편이어서 몇 번을 곱씹어야 작가의 의도에 가닿을 수 있을 듯했다. 쉽게 내용이 파악되는 대표작과 달리 진행되어서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도 있을 듯하다. 우중충한 분위기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야기를 선호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아내의 편지가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은 자신의 얼굴을 가릴 수 있는 가면을 착용하고, 아내를 유혹하기로 한다. 아내는 그에 반응했는데 주인공은 오히려 아내를 홀리는 가면에 큰 질투심을 느낀다. 세번째 노트에 그 과정과 심정이 고스란히 기록되었고, 마지막에 아내의 답장이 실렸다.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여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활자로 확인하는 순간의 충격은 또 달랐다 주인공의 패배감만 더 짙게 만들 뿐이었다.
과연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일이 옳은 것일까. 물론, 대한민국 사회에서 온전히 맨얼굴을 드러내고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 것이며, 그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가면은 필수불가결한 것일지도 모른다. 주인공은 가면과 본모습의 괴리감으로 많은 갈등을 겪는다. 주인공을 통해 작가는 독자들에게 '가면'으로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것을 전한다. 우리의 투명 가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