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 회한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민경욱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유족의 목소리보다 죽은 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 p.218

​

요즈음 퇴근길에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짧은 영상들을 정주행하면서 듣고 있다. 운전하는 중이기에 ASMR처럼 듣다 보니 괜찮다. 오히려 영상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더 무섭기도 하다. 무더위를 물리치고자 듣게 된 것은 아니었는데 의외로 쫓는 효과도 있다. 귀로 듣는 사건의 이야기는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아마 이십 년만 젊었더라도 법의학을 꿈꾸는 청소년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

법의학 교실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를 다룬 이 소설은 나카야마 시치리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의학 미스터리 장르를 이 작가의 작품으로 접했다. 존엄사에 물음을 던지는 <닥터 데스의 유산>이었다. 그동안 검사나 형사, 변호사처럼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법조인의 이야기만 읽다가 의사나 간호사 등 새로운 직업들과의 협업 이야기가 매력적이었다. 신작 소식을 누구보다 반기는 팬으로서 바로 읽게 되었다.

​

소설은 우라와 의대 법의학 교실에서 부검하는 미스터리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법의학계 권위자 미쓰자키 교수는 프로그램에서망언을 내뱉자, 의문의 협박 편지가 그의 앞으로 날아든다. 이후 길거리 한가운데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진 필리핀 여성, 오토바이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 의문의 남성, 태어난 지 5일 만에 사망한 아이 등 사건들이 벌어지고 조교인 쓰가노, 미국에서 온 조교수 캐시가 형사 고테가와와 공조해 진실을 밝히는 내용을 담는다.

​

술술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히포크라테스 시리즈>로 이어지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전작을 접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줄거리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었다. 미스터리 장르에는 감초 같은 콤비가 종종 등장하는데, 이 작품에서도 조교 쓰가노와 형사 고테가와가 마치 톰과 제리처럼 재미를 더해 주었다. 시원한 느낌의 결말보다는 서사 위주로 풀어가는 작품이어서 과정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

개인적으로 캐시라는 인물이 인상적이었다. 미쓰자키나 쓰가노, 고테가와에 비하면 비교적 조연에 가깝다. 처음에는 영어를 섞어 사용하는 외국인으로만 보였다. 필리핀 여성 독살 에피소드를 계기로, 캐시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외국인 타도 집회 현장을 보도하는 뉴스를 황급히 끄는 쓰가노에게 자신의 경험으로 일본인들이 외국인을 대하는 방법을 설명해 준다. 캐시가 보통의 일본인들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

많은 사건들이 매일 뉴스를 뜨겁게 달군다. 창밖을 보듯 그냥 지나치고 넘긴다면 하나의 해프닝처럼 끝나버릴 안타까운 사건들이 된다. 부검은 누운 자에게도, 살아 있는 자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사건의 진실을 캐내는 칼이 된다. 죽은 자는 여전히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도, 시신은 인간이 보지 못했던 악행 너머의 진실을 비춰 주는 거울이 된다. 법의학 교실을 지키는 세 명의 인물들은 독자에게 법의학의 의미를 되묻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