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통역사
리 랑그바드 지음, 손화수 옮김 / 푸른숲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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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가족을 안 지 벌써 12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통역 없이는 서로 대화를 못 한다는 게 답답해. / p.23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 조국의 땅에 발 붙이고 살겠다고 다짐했던 내가 다른 나라가 아닌 대한민국에서 언어의 장벽에 세게 부딪힌 적이 있다. 몇 년 전, 근무하던 회사는 다문화복지의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본 이방인들과 이렇게 매일 이야기를 나눈 적이 당시 삼십 년 평생 거의 처음이었다. 의사소통을 위해 서로 발짓과 손짓을 섞으면서 무던히 애를 썼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벽을 느꼈다.

이 책은 리 랑그바드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언급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우연히 선택하게 되었다. 통역사라는 직업에 늘 관심은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통역사들은 멀게만 느껴졌고, 통역이라는 일 드러나는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저것 인터넷 서점의 책 소개를 읽으면서 한국계 덴마크 국적의 작가님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디아스포라 문학을 요즈음 자주 접하는 독자로서 반가운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소설의 주인공은 어린 시절에 덴마크로 입양되었던 작가다. 성인이 되어, 한국에 있는 가족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사용하는 공용어가 다른 이들을 가로 막는 언어의 벽은 너무나 크다. 통역사이자 연인과 함께 한국 땅을 밟게 되었는데 둘의 관계를 밝히는 것에 고민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과연 성 정체성을 밝혀도 가족들과 주인공의 만남은 지속될 수 있을까. 이 물음표를 가지고 이야기는 흘러간다.

물음도 물음이지만, 작품 자체로 본다면 낯설게 다가왔다. 우선, 소설의 형식이 독특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체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도 제3자의 시선이 아닌 주인공 1인칭의 시점을 따른다. 가족의 말은 통역사가 말하기 전까지 독자도 알 수 없다. 이 지점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주인공의 기준에서 접한 작품들을 많이 읽었지만 이렇게 피부에 직접적으로 와닿은 적은 없었다.

개인적으로 주인공과 가족 사이의 거리감이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은 언급한 것처럼 동성의 통역사와 연애 중이다. 동성애는 한국 사회에서 아직까지는 보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주제라는 측면에서 두 사람은 가족에게 오픈할 것인지를 두고 많은 대화를 나눈다.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듯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이 느껴졌다. 특히, 배우자의 이야기를 아끼는 언니들에게 느끼는 감정이 뇌리에 깊이 남았다.

같은 문화권에 살고 있는 이들도 일상이 곧 전쟁인 것처럼 소통의 오류를 겪는다. 서로의 말을 듣지 않고,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며, 서로의 태도에 상처를 입는다. 어쩌면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통역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주인공과 통역사가 겪는 일들은 그동안 뿌리 깊게 박혀 인식하지 못했던 여러 관점들을 객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이들의 이야기가 곧 나에게는 다른 시각으로 한국 사회를 볼 수 있게 한 통역사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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