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담아, 엄마가
일리아나 잰더 지음, 안은주 옮김 / 리드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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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빨리 안 죽은 게 한이지. / p.8

애증이라는 감정은 무섭다. 정제되지 않은 증오나 애정이라면 선택도 훨씬 단순해진다. 그러나 두 감정이 뒤섞일 때, 우리는 끊어야 할 관계를 억지로 붙들고, 용서해서는 안 될 사람을 용서하게 된다. 그게 천륜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가족 간의 애증은 더욱 복잡하고 힘들게 만든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 않은가. 애증을 안고 평생 붙들고 살아가는 게 참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은 일리아나 잰더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처음 발견했을 때 제목과 소개글의 온도 차이가 기억에 남았다. 세상 따뜻한 제목의 온기와 소개글의 서늘함. 엄마는 딸을 애정하지만 딸은 엄마를 증오한다는 설정. 그 간극이 궁금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한 사람의 딸로서 공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페이지를 조심스럽게 넘겼다.

소설의 주인공은 매켄지다. 매켄지의 엄마는 렌지라는 닉네임을 가진 유명 소설 작가다. 갑작스러운 렌지의 죽음으로 매켄지는 유명 작가의 딸이라는 번거로운 자리에 놓이게 된다. 엄마에 대한 애정이 없다고 생각했던 매켄지 앞에 죽은 엄마로부터 편지가 도착한다. 이후로도 어디서든 편지는 그녀를 따라온다. 매켄지는 친구와 함께 엄마의 죽음과 그 뒤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술술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전형적인 영미권 스릴러의 구성을 따르는 작품이라 읽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팽팽한 긴장감보다는 가족의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오는 흡입력이 강하다. 4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임에도 두 시간 안에 충분히 완독할 수 있을 만큼 전개가 빠른 편이다. 출생의 비밀을 다루는 아침 드라마 스타일의 작품을 즐기는 독자들에게는 만족스러울 것이다.

개인적으로 매켄지의 엄마를 향한 감정 변화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매켄지에게 엄마는 없어도 되는 존재처럼 보였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것이 후련하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엄마의 죽음을 둘러싼 각종 이슈에 귀찮음을 표시하지만 결국은 엄마의 편지를 계기로 직접 사건을 파헤친다. 이런 행동은 아마도 증오가 아닌 애정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애초에 무관심했다면 편지는 그저 종이 조각에 불과했을 것이다.

현실의 모녀 관계보다 훨씬 극적인 이야기임에도 읽는 내내 낯설지 않았다. 딸로서 나 역시 엄마에 대한 감정이 언제나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이 소설이 말하는 것은 한 여성의 비밀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관계일수록 애증은 필수불가결하다는 것. 가장 가까운 관계일수록 사랑과 미움이 얼마나 깊이 뒤엉킬 수 있는가. 나는 그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답이 없는 질문이 한동안 머릿속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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