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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으로 들어가기
카롤리네 발 지음, 전은경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바다는 엄청나게 아름답고 거대한데, 사람들이 바다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건 본인들 잘못이었다. / p.152
이 책은 카롤리네 발이라는 독일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전에 발간되었던 <스물두 번째 레인>이라는 작품을 우연히 인터넷 서점 신간 소식에서 접하고 내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좀처럼 기회도 닿지 않고, 다른 작품들을 읽느라 자꾸 순위에 밀려 그동안 그 책을 읽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최근에 그 작가의 새로운 신작 소식을 듣게 되었다. 역시 새 작품으로 시작하는 게 좋지 않을까. 기대를 가지고 페이지를 넘겼다.
소설의 주인공은 이다라는 인물이다. 이다의 어머니께서 약물 중독으로 세상을 떠난 이후 큰 충격을 받았다. 죄책감으로 방황하다가 언니가 살고 있는 집에 가기 위해 기차에 올랐다. 그런데 돌연 연고지가 없는 외딴 뤼겐이라는 동네에 내렸고, 그곳에서 가게를 하는 크루트라는 노인을 만난다. 크루트의 도움으로 가게에서 일하게 되고, 노인의 아내인 마리안네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이다와 크루트, 마리안네는 어떤 삶을 살아갈까.
술술 읽혀지는 작품이었다. 추리 장르 소설과 결이 정반대의 소설이어서 머리를 쓸 필요도, SF 장르의 소설처럼 지식을 요구하는 것도 없었다. 그저 감정적으로 수용이 가능한 마음만 있으면 충분히 도전할 수 있을 것 같다. 도파민을 추구하는 독자들에게는 많이 심심하게 느껴지겠지만 스토리 자체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350 페이지 전후의 작품이었는데 완독까지 대략 두 시간 정도 소요된 듯하다. 빠르게 읽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다에게 공감하면서 읽었다. 이다는 어머니를 많이 원망하면서도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세상에 자신을 이해해 주고, 지켜 줄 사람이 없다는 것에 큰 불안을 가지기도 한다. 읽는 내내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 역시도 술을 좋아하셔서 그로 인한 지병으로 돌아가셨는데 원망이 들면서도 아버지를 조금 더 이해하지 못했던 스스로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중이어서 더욱 몰입했다.
또한,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라는 작품이 떠올랐다. 먼 친척에게 맡겨져 있던 소녀가 점차 바뀌어가는 스토리인데 화자를 성인으로 바꾼다면 어떻게 전개가 될까. 나이를 먹으면서 겪는 세상의 온갖 희노애락 한 스푼, 성숙해지는 마음 한 스푼, 동심보다 더 커져버린 현실간 한 스푼씩 담다 보면 마치 이 작품이 한 접시의 맛있는 음식처럼 다가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 작품에서 감동을 받았던 독자라면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 해결할 일이 늘어가면서 혼자 하는 일들이 익숙해지지만 체온을 기다리게 될 때가 있다. 과연 내 인생을 바꾸어 줄 귀인은 나타날까. 아니, 내가 그 누군가의 손을 잡아 줄 만큼 따뜻하고도 다정한 사람일까. 크누트와 마리안네의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늙어간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여전히 인간으로부터 인류애를 상실하겠지만 마음을 데워 주는 스토리에 동하는 것을 보면 나 역시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