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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길지만 빠른 것이 인생이라 한 발만 잘 디뎌도 충분할 수 있다. / p.468
3~4 년 전 설날 연휴로 기억한다. 동생 집에서 아버지와 이것저것 OTT를 둘러보다가 <오토라는 남자>라는 영화를 함께 보게 되었다. 이미 <오베라는 남자>의 영화를 알고 있던 터라 별 기대없이 보았는데 오토라는 인물에게 아버지의 모습이 느껴지더니 나도 모르게 울컥했던 기억이 있다. 창피하게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썼는데 지금은 안 계신 상황에도 그 기억이 꽤 선명하다.
이 책은 프레드릭 배크만이라는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오베라는 남자>, <오토라는 남자> 영화의 원작 소설을 집필하신 작가님이다. 사실 원작은 아직 읽지 못했는데 영화가 워낙에 강렬하게 인상적이어서 시간이 될 때 꼭 읽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이번 신작 소식을 접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새 것을 더 좋아하지 않은가. 신작을 읽은 후 취향을 판단해 보기로 했다. 기대를 가지고 페이지를 넘겼다.
소설에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테드와 루이사를 주축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루이사는 자신의 엽서 그림을 실제로 보기 위해 찾은 교회에서 오히려 쫓기게 되었는데 길거리에서 유명한 화가를 만난다. 화가는 루이사에게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지만, 다음 날 지병으로 죽게 되었다. 화가가 친구인 테드에게 유언으로 루이사에게 그림을 건네라는 말은 남겼고, 테드는 친구의 유골을 가지고 루이사와 기찻길에 오른다.
술술 읽혀지는 작품이었다. 개인적인 상황과 두께 때문에 부담을 느꼈던 게 사실이다. 거기에 영화로만 보았을 뿐 원작으로는 처음 접하는 작가님의 소설이어서 취향에 맞을지 그것 또한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 걱정과 부담이 무색하게도 페이지는 쉽게 넘어갔고, 끊기는 게 아쉬워 전자책을 다운로드받아 수시로 읽었다. 완독까지는 일주일 정도가 소요되었지만 한 호흡으로 읽는다면 반나절 정도 걸릴 듯하다.
개인적으로 배경이 주는 여운이 참 인상적이었다. 테드와 화가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잔교에서 노는 것을 추억하며, 루이사에게 이야기를 전한다. 그들은 잔교에서 그림을 그린다거나, 그들만의 일탈을 벌인다거나, 각자의 사정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약속처럼 잔교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활자로만 표현이 되었는데 상상력이 부족한 나에게도 그 풍경이 고스란히 그려질 정도로 생생하게 다가왔다.
읽는 내내 각기 아픈 가정사를 지닌 인물들이 잔교에 함께 모인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에게 잔교는 단순한 아지트를 넘어선, 특별한 의미의 공간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그곳은 고단한 삶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피난처였을지도 모르겠다. 자연스럽게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OST <혜화동>을 흥얼거렸다. 일상에 묻혀 희미해졌던 유년 시절의 아지트와 친구들을 다시금 소환시키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