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도 렌털이 되나요
이누준 지음, 김진환 옮김 / 하빌리스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대 중앙에 서자 눈부신 여름빛에 휩싸였다. / p.9

꽤 오래 전에 보았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 인상 깊은 장면이 하나 있다. 윤윤제의 생일이 되면 성시원은 쿠폰을 선물해 주는데 졸업식에 부모님 빌려 주기를 사용한 것이다. 윤윤제는 부모님께서 일찍 돌아가셨는데 성시원의 부모님께서 윤윤제의 졸업식에 참여하고, 성시원이 졸업식 때 정문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는 부모님이 없어요.'라는 대사를 날린다. 그때는 웃겼는데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보니 서글프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이누준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성함만 보고 당연히 한국 작가의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아래 옮긴이가 적혀 있어서 의아함을 느껴 검색해 보았다. 다시 확인해 보니 일본 작가의 소설이었고, 예명인 듯했다. 그러다 줄거리를 보고 흥미가 생겼다. 가족 역할 대행이라는 게 상식적으로는 물음표를 가지게 되는데 어떤 식으로 감동을 주는 이야기일까. 가족 이야기를 그냥 지나갈 수 없는 독자로서 기대가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유나라는 인물이다. 고등학생이자 연극 배우로 활동 중인데 극단이 망할 위기에 처했다. 꼭 서고 싶었던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는 통보를 받았는데 동시에 독특한 제안을 하나 받는다. 가족 연기를 해 달라는 것이다. 극단에서는 이미 유나의 부모님께 허락을 받은 상황이며, 그 누구에게도 연기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아야 한다. 극단의 미래를 위해 낯선 가족의 일원으로서 연기를 하게 된 유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술술 읽혀졌던 작품이었다. 크게 생각이 필요한 소설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 있는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조금 의문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이야기는 또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흥미롭게 다가왔다. 힐링 장르의 소설이 대부분 가볍게 읽기 좋다는 점인데 이 작품도 딱 그 장르의 특성에 벗어나지 않았다. 280 페이지 전후의 작품이었는데 한 시간 반 안에 충분히 완독이 가능했다.

개인적으로 언급한 것처럼 의문을 가지면서 읽었다. 어떤 서사를 가진 가족의 딸로서 들어가게 되는데 다른 구성원들은 이를 몰랐을까 싶었다. 읽는 내내 드라마 <아내의 유혹>이 떠올랐다.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으니 얼굴이 다른 딸이 와도 그냥 넘어가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결말에 의문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되기는 했지만 그 자체에는 여전히 현실적으로 애매모호하다.

가족의 소중함을 알릴 수 있는 이야기로 예상했지만 그것보다는 피가 섞이지 않은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가족도 물론 소중하지만 가끔은 물이 피보다 진할 때가 있는 법이다. 결말에 이르러 그 지점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굳이 가족을 렌털할 일은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타인이 필요하다면 성시원이 그렇듯, 그리고 유나가 그렇듯 기꺼이 어깨를 빌려 줄 수 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