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후쿠
김숨 지음 / 민음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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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간단후쿠를 입고, 나는 간단후쿠가 된다. / p.7

이 책은 김숨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예전에 <잃어버린 사람>이라는 작품을 읽었다. 해방 후 부산의 이야기를 담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꽤 두꺼운 페이지 수의 소설임에도 푹 빠져서 몰입했다. 이후 시각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무지개 눈>도 구매했는데 아직 기회가 닿지 않아 읽지 못했다. 거기에 이번 신작 소식도 접했는데 SNS와 지인들로부터 평의 꽤 좋아서 기대가 되었다.

소설은 일제강점기를 시간적 배경으로 두고 있다. 화자는 위안부 피해자이다. 열다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뭣도 모르고 속아 스즈랑에 도착했고, 개나리라는 이름 대신 요코로 불리었다. 매일 자신의 방으로 찾아오는 군인들에게 군표를 주고, 삿쿠를 끼우라고 말했다. 그곳에 있는 동안 보고 들었던 단어가 소설의 목차이며, 그것으로부터 시작된 화자와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술술 읽혀지면서도 어려웠던 작품이었다. 스토리만 이해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소설이라기보다는 시라는 장르가 떠오를 정도로 문체가 비유적인 표현이 많이 등장하는 편이다. 어떤 행동이나 생각, 감정을 표현할 때에도 직설적으로 눈에 들어오기보다는 주위의 분위기나 타인의 말을 통해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초반에는 낯설었는데 눈에 익고 난 다음부터는 속도가 붙었다. 완독까지 대략 네 시간 정도 걸린 듯하다.

개인적으로 화자가 겪었던 상황 하나하나가 인상적으로 남았다. 눈이 보이지 않는 소녀에게는 군표를 내밀지 않았던 군인들, 보름마다 이루어졌던 위생 검사, 동생의 죽음을 언니에게 차마 알리지 못했던 동료들까지 전체적인 그들의 상황이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 일본어도 모르는 소녀들이 어떤 맥락인지도 모른 채 '아리가또 고자이마스','스미마센'을 군인들에게 말하는 부분은 더욱 기억에 남았다.

그들이 처한 상황은 참 비극적이고도 마음이 아팠는데 이를 서술하는 문장들은 오히려 차분하고, 담담했다. 심지어 출장 위문을 갔을 때 불의의 사고로 동생이 죽게 되었음에도 그녀의 동료들은 언니에게 거짓말을 했다. 분명히 피가 끓을 정도로 애통한 사건임에도 그냥 일상처럼 건조한 문장으로 표현이 되었다. 독자로 하여금 이 부분들이 더욱 애달프게 다가오는 지점이 아닐까 싶었다.

제목인 간단후쿠는 위안소에서 입었던 원피스라고 한다. 그래서 화자는 자신을 간단후쿠라고 설명했다. 모든 것들이 다 물건이나 명칭으로 표현되는데 이 또한 이렇게 아픈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많은 여운을 어떻게 적을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아예 허구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어쩌면 과거는 더 잔혹했고, 소설이기에 덜 비극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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