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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순간들
이아 옌베리 지음, 우아름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세상의 진정한 원동력이기도 한, 모든 것에 발동을 거는 명령: 앞으로, 오직 앞으로. / p.23
이 책은 이아 옌베리라는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딱히 뭔가 눈에 들어와서 선택한 책은 아니었다. 그냥 표지만 보고 아무런 정보 없이 읽게 된 것이다. 앞 페이지를 보니 북유럽 국가의 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무민 작가 '토베 얀손'이 기억이 났다. 최근에 <정직한 사기꾼>을 읽었을 때 그 밍숭맹숭한 느낌이 너무나 강렬해서 새로운 작가의 작품 역시도 기대가 되었다.
소설의 화자는 우연히 보게 된 하나의 메시지로부터 과거를 되짚는다. 소설에는 크게 네 사람이 등장한다. 헤어진 전 연인과 과거 꽤 가깝게 지냈던 친구, 자신의 인생에서 만났던 한 남자와 사랑에 몰입되었던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네 사람과 화자의 관계가 마치 필름처럼 펼쳐진다. 이 네 사람은 각자 화자에게 큰 영향을 미친 듯하다. 개성이 제각각이었던 네 사람은 화자에게 어떤 사람으로 남겨져 있을까.
조금 어렵게 다가왔던 작품이었다. 우선, 확실하게 드러난 것보다 문장을 곱씹으면서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문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보니 읽는 것도 속도가 더디게 느껴졌다. 약간 시를 읽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200 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작품이었는데 오전에 세 시간 넘게 걸렸다. 이런 류의 소설이 쉽게 읽혀지지 않는 편이어서 더욱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소요된 듯하다.
개인적으로 무언가 인상 깊은 한 사람의 줄거리보다는 전체적인 맥락이 인상 깊게 남았다. 사실 이 사람들의 이야기가 특별하지도 않았다. 예를 들면, 화자와 친한 친구였던 니키는 자기 주장이 강하면서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했던 사람이었다. 남자 친구와 멀리 훅 떠나고, 니키 부모님의 부탁에 날아간 화자에게 욕을 퍼붓는 인물이었는데 그게 뭔가 임팩트가 남을 사건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너무나 흔한 사람들의 유형인 것 같았다.
이게 어떻게 보면 제목 그대로 화자에게 '기억의 순간들'이었고, 그것을 너무 잘 표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읽는 내내 언급한 것처럼 필름을 마치 되감아 보듯 하나하나가 과거를 회상하는 것처럼 다가왔다. 어느 부분에서는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화자와 함께 시간을 나눈 이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웠고, 그렇게 표현한 작가의 방법도 좋았던 것 같다.
책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타인에게 나는 어떤 기억의 순간들로 남을지 궁금해졌던 작품이었다. 요한나처럼 화자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아낌없이 해 주면서 이해해 주는 사람일까, 아니면 니키처럼 기분을 고스란히 표현해 힘들게 만드는 사람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순수하게 살아왔지만 남편을 만나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살아온 엄마일까. 해답은 알 수 없지만 이런저런 기억의 순간들을 되짚을 수 있는 이야기여서 어렵지만 재미있는 도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