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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깃든 산 이야기 ㅣ 이판사판
아사다 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5년 9월
평점 :


이모는 감정 없는 고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 p.13
이 책은 아사다 지로라는 일본 작가의 소설이다. 인터넷 서점을 통해 '이판사판 시리즈'를 알고 있었지만 관심을 가지고 드문드문 책을 구매했는데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그러다 이렇게 신작 소식을 접했다. 이왕 읽게 된 거라면 신작부터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취향에 맞는다면 소장하고 있는 다른 시리즈의 작품들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괴담집이어서 부담이 없었던 부분도 있었다.
소설의 화자는 신관 가문의 아이다. 미타케 산의 괴담을 이모로부터 듣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야기는 현실에 있을 법하기는 하지만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흥미로웠다. 아이는 이야기꾼 이모의 입을 통해 들은 이야기를 자신의 상상력으로 조금씩 키워갔다. 작가의 자전적 괴담이라고 하는데 각각의 스토리가 마치 하나의 배경처럼 이어지는 듯한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술술 읽혀지면서도 조금 어렵게 다가왔던 작품이었다. 할머니로부터 괴담을 듣는 듯한 착각을 준다는 측면에서 친근감이 느껴졌다. 듣는 풍경들이 고스란히 머릿속으로 상상이 되었다. 그런데 산을 주제로 한 괴담 내용 자체는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기이한 느낌을 피부로 체감하기가 조금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가 가진 매력이 큰 작품이어서 충분히 완독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산이 흔들린다>라는 작품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았다. 소설은 이타루 씨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타루 씨는 좋은 대학을 나와 나름 똑똑한 인물이다. 그러나 폐병을 앓고 있어 신체적으로는 조금 유약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이후 조선인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과 다르게 이타루 씨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 사람들은 이러한 이타루 씨를 경멸하다시피 했음에도 이러한 주장을 끝까지 펼쳤다.
다른 작품들은 그저 기이한 괴담 정도로 생각하고 읽었는데 유일하게 딱 와닿는 지점이 있어서 기억에 남았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역사 교육을 받은 국민들이라면 관동대지진 시기에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에게 했던 그 몹쓸 짓들을 배웠을 것이고, 나 역시도 그 국민 중 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당시의 잔혹함을 스치고 지나갈 정도이기는 하지만 체감할 수 있었고, 너무나 이타루 씨의 의견에 공감했다.
소개에 등장한 <파이란>이라는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다. 아니, 최민식 배우님께서 출연한 작품이라는 사실만 인지할 뿐 초등학교 때 나와서 기억조차도 없다. 소설 내용과 관련없지만 읽는 내내 그 작품이 궁금해졌다. 이렇게 흥미롭게 괴담 스토리를 집필한 작가의 영화라면 그래도 취향에 맞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평소 읽는 취향과는 조금 벗어났지만 푹 빠져서 읽게 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