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멜론은 어쩌다
아밀 지음 / 비채 / 2025년 9월
평점 :
품절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멜론은 자신이 좋았다. / p.113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주류와 비주류는 있지만 주류가 결코 당연하지도, 그렇다고 비주류가 당연하지 않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주류의 삶을 살고 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비주류의 일원이 될 수도 있다. 그게 꼭 나한테만 해당이 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본다. 내 가족과 친구도 비슷하게 그 선을 넘나들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선을 긋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조금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 책은 아밀 작가님의 단편소설집이다. 예전에 리뷰에서도 올린 적이 꽤 있는 듯하다. 앤솔로지 작품집에 실린 다섯 작품 중 유일하게 인상 깊게 남았던 게 작가님의 소설이었다. 이후로 종종 신간을 찾기는 했지만 고전 소설에서 번역가로 더욱 만나게 되는 작가님이었다. 이번에 신작 소식을 접했는데 주변 SNS에서 평이 꽤 괜찮았다. 그래서 궁금했다. 전에 읽었던 작품만큼의 깊은 인상을 기대하게 되었다.
소설집에는 일곱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모든 작품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언급한 비주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하다. 특히, 성소수자가 주인공인 작품이 있었다. 주인공을 짝사랑하는 이가 뱀파이어인 것도 모자라 성소수자이며, 성관계 학습 로봇을 렌탈하는 성소수자, 동성애가 주류인 세상에서 이성애를 하는 주인공 등이 등장한다. 다른 인물들도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거나 비현실적인 일을 겪는다.
전반적으로 술술 읽혀졌다. 퀴어 소재가 조금 낯설다면 부담스러웠겠지만 그동안 소재가 되었던 작품들을 종종 읽었던 터라 크게 거부감이 없었다. SF 소설의 느낌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해가 어렵지도 않았다. 비현실적이지만 어느 측면에서 충분히 가능성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들도 있었다. 330 페이지 정도의 작품이었는데 두 시간 반 소요가 되었다. 멈추지 않고 한 호흡에 읽을 수 있을 몰입감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노 어덜트 헤븐>이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멜론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아이다. 열두 살에 죽음을 맞이해 지금은 천국에서 지내고 있다. 신과 주변의 평가가 좋은 멜론에게 하나의 제안이 들어온다. 아이들은 무조건 천국으로 갈 수 있지만 어른들은 재판을 통해 '아이'와 같아야 천국을 올 수 있는데 멜론의 어머니 재판의 증인을 해 주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고민하던 멜론은 이에 수락한다.
처음에 읽을 때에는 선악에 대한 내용을 다룬 작품인 줄 알았다. 사람들의 인식에서는 착한 사람은 천국으로, 악한 사람은 지옥으로 간다는 게 하나의 인식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멜론이 가진 신체적인 특징과 죽음의 이유가 드러난다. 자연스럽게 사람이라면 보이지 않는 무언가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깊게 와닿았다. 심지어 소설집의 제목도 이 작품에 하나의 문장이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여러모로 참 매웠던 작품이었다. 초반에 실린 <나의 레즈비언 뱀파이어 친구>와 <어느 부치의 섹스 로봇 사용기>는 혼자 읽은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적인 관계 묘사가 잘 드러나는 편은 아니었으나, 신체적 반응이나 소재 자체가 수위가 높았다. 그런데 이성애가 주류이지만 동성애가 잘못된 것은 아니기에 어느 측면에서 누군가는 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 않을까. 여러 모로 묘한 느낌을 주는 소설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