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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르의 거미
치넨 미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5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하루는 썩어서 반쯤 떨어져 나간 입술을 천천히 벌렸습니다. / p.12
이 책은 치넨 미키토라는 일본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얼마 전에 <이웃집 너스에이드>를 읽었고, 기억에 남는 작품 중 하나가 <구원자의 손길>이 있다. 의료 미스터리 장르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작가 중 한 분이셔서 이제 믿고 읽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번에는 호러 장르라는 게 더 새롭게 다가왔다. 새로운 장르의 작품은 어떻게 이끌어갈까. 많은 기대가 되었다.
소설은 하루라는 여성의 전설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족들이 풍족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 하나로 촌장에게 시집을 가기로 한다. 가족의 행복함을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하루는 시집을 가는 것이 아닌 제물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홋카이도 황천의 숲으로 공간적 배경이 드러난다. 리조트 개발을 원하는 곳인데 사람들이 들어가기 꺼려한다. 그곳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술술 읽혀지면서도 조금 어렵게 다가왔던 작품이었다. 그동안 작가의 작품을 두 편이나 읽었기 때문에 문체나 스토리에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그만큼 재미있게 읽었다. 호러 장르여서 조금 무섭게 다가오기는 했지만 그것조차 이겨낼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설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두세 번 읽어야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450 페이지 정도의 작품이었는데 다섯 시간이 걸렸다.
개인적으로 작가님의 장점을 살린 의학적 미스터리와 신화의 결합이 흥미롭게 읽혀졌다. 소설에 등장하는 아카네는 의사이며, 과거 가족이 실종된 아픔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아카네가 가족의 실종과 황천의 숲이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과 리조트 인부의 실종도 그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에 숲을 넘어가기로 한다. 아카네로부터 드러나는 의학적 미스터리와 황천의 숲 신화가 이질감 없이 연결되었다.
조상들의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메시지보다는 열대야로 힘든 여름을 날릴 수 있는 스토리가 더욱 재미있게 다가왔던 작품이었다. 그만큼 뭔가 생각을 비우고 푹 빠져들기 좋다는 뜻이었다. 사실 호러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독자 중 한 사람이지만 문체에 맞는 작가 쓰는 장르라면 도전해 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가벼우면서도 무섭게 읽기 좋았던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