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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방학
연소민 지음 / 열림원 / 2025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부모 자식 간에 역할이 바뀌는 때는 언제일까. / p.134
동생이 결혼하게 된 이후부터 부모님의 부양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즈음부터는 어머니와 함께하는 미래를 그렸던 것 같다. 애초에 결혼 생각 자체가 없는 사람이었기에 자연스럽게 그 몫은 나에게 넘어오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어머니로부터 만나는 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한동안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어머니께 서운해 거리를 둔 적도 있었다. 왜 그 부분을 당연하게 여겼을까.
이 책은 연소민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띠지에 적힌 모녀 독립에 관한 내용이 눈길을 끌어 선택했다. 공감뿐만 아니라 어쩌면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지만 언젠가 나와 엄마 모두 독립하거나 떨어져 살아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소설에서 큰 실질적 도움까지는 아니더라도 심적으로 깊이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점에서 기대가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솔미라는 인물이다. 어릴 때 아버지께서 이유도 없이 집을 나갔다. 그 충격으로 집은 그야말로 쓰레기장이 되었다. 어머니께서 우울증으로 인한 저장 장애 증상을 보이셨기 때문이다. 솔미네 집은 도망치듯 어머니의 고향인 고흥으로 내려오게 되었지만 증세는 점점 심해졌다. 대학교에 입학한 솔미는 어머니의 병을 고치기 위해 고군분투로 노력한다. 솔미의 가족 이야기와 성인이 되어 만난 수오와 고흥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술술 읽혀졌던 작품이었다. 너무나 현실적으로 다가와서 초반부터 몰입이 되었다. 문체나 다른 구성을 생각할 틈도 없이 그냥 그대로 빠져들어 읽었던 것 같다. 270 페이지 전후의 작품으로 기억하는데 모처럼 흐름을 끊지 않고 쭉 완독했다. 시간만 보면 대략 두 시간 내로 가능했다. 아마 주인공과 비슷한 2000년대생 여성 독자들이라면 더욱 크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어머니의 독립이 인상적이었다. 어머니는 솔미에게 긴 여행을 갔다 온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부모가 자녀를 뒷바라지하듯 오랜 시간을 솔미가 어머니를 지켜왔다. 소설에서는 이를 '육모'라고 표현했다. 어머니의 직업을 '전업 자녀'라고도 했다. 사실 그동안 자녀가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으로만 인식되었는데 반대로 부모가 자녀로부터 독립한다는 개념을 새롭게 생각할 수 있었다.
고흥군 인근 농어촌 지역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많은 부분이 정겨웠고, 또 익숙했다. 그러면서 솔미와 비슷한 상황이기 때문에 나의 어머니, 그리고 나의 관계를 다시금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말로만 어머니의 새 출발을 응원한다고 오히려 솔미처럼 나의 어머니를 떠나지 못하게 잡는 것은 아니었을까. 독립이라는 것은 어쩌면 어머니께도 가을 방학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머리로는 알지만 벌써부터 부모처럼 서운함이 밀려 왔던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