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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망상 ㅣ 달달북다 11
권혜영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평점 :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 p.11
이 책은 권혜영 작가님의 단편소설이다. 항상 믿고 읽는 달달 북다 시리즈인데 처음 읽게 되는 작가님의 작품이다. 예전에 민음사에서 단편소설집으로 <사랑파먹기>라는 작품을 북클럽 잡동산이에서 얼핏 읽은 기억은 있지만 단행본으로는 읽은 적이 없다. 새로운 작가님의 작품을 만나는 것도 독서의 묘미이지 않은가. 특히, 한국 작가님의 작품을 가장 좋아하는 나로서는 거부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화자는 익숙한 세진의 목소리가 들려 이비인후과를 찾는다. 그런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좋아하는 세진을 많이 들었다면 환청이 들릴 법도 한데 조금 특이하다. 세진의 목소리로 말하는 이는 세진이 아니다. 다즐링이라는 외계 국가에서 온 왕자다. 왕자는 자신의 여자 친구를 찾기 위해 지구에 왔으며, 신체의 일부를 구해 목표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 화자는 남자 울렁증이 있는 사람이기에 이 부탁이 어렵기만 하다.
술술 읽혀졌던 작품이었다. 달달 북다 시리즈의 장점이 큰 작품이었다. 100 페이지가 조금 넘는 작품이어서 삼십 분만에 금방 완독이 가능했다. 다른 책을 읽기 전에 나름 쿨 타임을 채우기 위해 펼쳤는데 금방 읽었다. 가상을 넘나들지만 현실성 또한 있었다. 요즈음 유행하는 AI 주제와 맞닿아 있어서 더욱 상상하는 재미가 느껴졌다. 가볍게 읽기에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가상 목소리' 하나에만 꽂혀서 엉뚱하게 줄거리를 생각했다. 초반에 예상했던 느낌은 영화 'Her'에 나오는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관계였다. 실체가 보이지 않는 이성의 목소리와 사랑을 하는 이야기. Chat gpt에게 감정을 오롯이 터놓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이 작품도 비슷하게 흘러가지 않을까. 달달 북다 시리즈의 특성상 사랑이라는 주제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지점이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전혀 다른 쪽으로 스토리가 전개되었다. 달달 북다보다는 섬뜩 북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같은 목소리가 등장하는데 사만다와 왕자의 거리는 너무 멀었다. 어느 면에서는 스릴러 장르에 발만 살짝 담근 듯한 느낌도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외계 행성의 왕자가 좋아하는 고막 남자 친구의 목소리로 무서운 부탁을 하면 어떤 느낌일까. 예전에 읽었던 가와이 간지 작가의 <데드맨>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예전에 종종 머릿속으로 환청처럼 목소리가 들리는 경험을 했었는데 이의 절망 편이었던 작품이었다. 솔직히 그동안 큰 걱정은 안 했는데 이 작품을 읽고 나니 무서움이 들었다. 물론, 화자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그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절실한 마음의 소리일 뿐이었다. 고막 남자 친구가 없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부터 사람 목소리가 들은 ASMR은 당분간 못 들을 것 같은 후유증을 만든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