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가 있었다
샬롯 맥커너히 지음, 윤도일 옮김 / 잔(도서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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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가 여덟 살이었을 때, 아빠는 목에서 배까지 나를 갈랐다. / p.13

이 책은 샬롯 맥커너히라는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예전에 이 출판사에서 발간한 중국 작가의 소설을 참 인상 깊게 읽었다. 기구한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2년 정도 지난 시점인데 아직까지도 그 느낌이 생생하다. 하나의 작품으로 좋게 보는 것도 조금 이상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꽤 임팩트가 있었다. 출판사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던 터라 이번 신작도 기대가 되어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인티라는 인물이다. 생물학자이며, 늑대의 개체를 늘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한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이 프로젝트에 대해 회의적이다. 아니, 반대한다. 인티는 마을 사람들에게 늑대가 늘어나게 되면 초식 동물인 사슴의 개체 수를 줄일 수 있고, 생태계를 원활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인티가 가지고 있는 특이한 공감각 증상과 함께 이야기가 전달된다.

술술 읽혀졌던 작품이었다. 생각했던 내용과 다르게 흘러서 많이 당황했다. 그런데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몰입하고 있었다. 영미권 소설임에도 크게 문체가 취향과 맞지 않거나 생물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등장하거나 이런 류의 어려움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추리 스릴러 장르로 구분이 되어 있는 만큼 스토리와 내용을 전부 다 잡았던 작품이었던 것 같다. 대략 세 시간 정도에 완독이 가능했다.

읽으면서 초반에는 몰입도가 굉장히 높았다. 특히, 첫 문장부터가 압도적으로 와닿았다. 화자가 여덟 살이었는데 아버지께서 나의 배에서부터 목까지 칼로 가른다는 것 자체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동물이 칼을 들고 새끼를 자르는 것은 말이 안 되고, 아버지라는 사람이 자녀를 자르는 것은 사회 이슈로 나올 정도로 더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자마자 소름이 돋았다. 물론, 인티가 가지고 있는 특수한 증상 때문이었다.

그러다 중후반부에서 단순한 몰입도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들었다. 늑대 개체 수를 늘리는 것이 곧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존 본능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보여졌다. 아마 늑대가 아닌 사슴이나 토끼처럼 초식 동물이었다면 이렇게 반대할 일은 없지 않을까. 생태계를 복원하는 입장에서 미래 투자로 프로젝트가 성사되어야 한다는 점은 공감했지만 반대 입장 역시도 너무 이해가 되었던 터라 어렵기도 했다.

책장을 덮고 나니 추리 스릴러 장르로 설명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환경적인 측면과 인간의 심리적인 측면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 이상으로 표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추리 스릴러 장르를 읽는 이유 중 하나가 일상을 잊을 수 있는 재미의 측면이 꽤 강한 편인데 재미로 소비하는 것 자체가 너무 아까울 정도로 묵직한 서사가 담겼다. 읽는 내내 리처드 파워스의 <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이라는 작품이 떠올랐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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