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디트랜지션, 베이비
토리 피터스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 영혼은 그다음에 생각해 봅시다. / p.13
이 책은 토리 피터스라는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한국 작품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소재인 퀴어가 등장한다고 해서 선택한 책이다. 아무래도 퀴어 관련 작품들을 많이 접한 탓인지 크게 거부감이 없다. 오히려 더 잘 읽힌다거나 생각의 폭을 넓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어서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 그동안 외국 작가의 에세이로서 퀴어를 접한 적은 있었지만 소설로서 작품을 접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 지점이 기대가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크게 세 명이다. 리즈와 에이미, 카트리나. 리즈는 임신과 출산을 원하는 트랜스젠더 여성이며, 에이미는 한때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살았지만 이를 포기하고 다시 원래의 성인 남성으로 돌아가 에임스라는 이름을 가졌다. 카트리나는 에임스의 직장 상사이자 연인으로 정신적인 성과 생물학적인 성이 일치한 시스젠더 여성이다. 카트리나가 에임스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술술 읽혀지면서도 어렵게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주요 등장인물이 세 명이라는 점에서 그동안 해외 소설에서 느꼈던 단점이 없어서 그 지점은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성소수자와 관련된 용어와 영미권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문화에 대한 내용들이 종종 나와서 이해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대략 500 페이지가 넘는 작품이었는데 이틀 정도에 나누어서 완독했다. 시간만 본다면 여섯 시간 정도 소요가 된 듯하다.
개인적으로 리즈의 심리가 궁금했다. 언급했던 것처럼 리즈는 어머니가 되기를 원하는 트랜스젠더이다. 읽으면서 분명 자연적으로 임신이 될 수 없는 상황일 텐데 가능 여부에 대한 물음표가 머릿속을 채웠다. 특히, 리즈는 신체적으로 남성의 흔적이 아직 남은 트랜스젠더라는 점에서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초반에 에이즈 보균자인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렇게까지 절실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중후반부에 이르러 리즈의 과거 이야기와 아버지가 되기를 거부한 에임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모성애가 과연 시스젠더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전유물일까. 리즈처럼 여성의 정체성을 가지면서 남성의 몸을 한 트랜스젠더인데 왜 그녀에게 부성애가 아닌 모성애로 인식이 될까. 그동안 가지고 있던 편견이 깨지는 것과 동시에 가졌던 의문 자체가 시스젠더 여성이기에 이 시각으로 읽고 느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 지극히 사적인 취향만 고려하자면 별로 좋아하지 않을 스타일의 작품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는 모르는 성소수자의 세계의 날것을 그대로 시청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수위도 세고, 단어 선택도 직설적이다. 그럼에도 완독한 이유는 단순하게 재미만 가지고 가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거부되는 통념이 한방 크게 때리는, 그 여운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깊고 묵직하게 머릿속에 남았던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