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뱅상 식탁
설재인 지음 / 북다 / 2025년 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모든 사람이 저런 건 아니야. / p.18
이 책은 설재인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예전에 작가님의 <그 변기의 역학>이라는 작품을 읽었다. 내용도 기억하지만 그 작품이 주는 축축한 분위기와 으스스한 느낌이 지금도 떠오를 정도로 깊은 특별함을 주었다. 원래 그렇게 기괴한 작품을 선택해 읽는 편이 아니어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이번에 신작 발간 소식을 접해서 바로 읽게 되었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한 작가님 중 한 분으로 뇌리에 박혀 있다 보니 더욱 궁금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빈승이라는 인물이다. 미미라는 이름을 가진 목소리를 듣는다. 미미는 빈승에게 복권 당첨을 주었고, 일종의 거래를 제안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연구에 응하라는 것이다. 연구를 위해 만든 식당이 바로 뱅상 식탁이다. 뱅상 식탁은 점심에 네 팀, 저녁에 네 팀만 받는다. 휴대 전화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손님은 같은 곳을 보고 식사를 하게 되는 구조 또한 독특하다.
어느 날, 뱅상 식탁에는 네 팀이 방문한다. 교장 선생님 수창과 평범한 중년 여성 애진, 엄마 정란과 딸 연주, 오랜만에 만난 친구 상아와 유진, 직장 동료 성미와 민경.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같은 공간에서 총성을 듣는다. 그리고 경악하게 만드는 빈승의 목소리가 들린다. 각 테이블에서 한 명만 살 수 있다는 것. 살고 죽을 사람은 합의를 통해 정하라는 것이다. 이들의 사연과 살아남기 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술술 읽혀졌지만 어려웠던 작품이었다. 스토리의 몰입도가 굉장이 높았다. 230 페이지가 조금 넘는 이야기인데 한 시간 반 정도에 완독했다. 심지어 첫 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긴장감이 내내 책장을 넘기게 했다. 흥미로운 스토리지만 심리적으로는 굉장히 혼란스럽고 어려웠다. 읽으면서 혼이 빠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제정신을 찾기가 힘들었다.
개인적으로 인간의 군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누구나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런데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진짜 하나같이 추악하다. 심지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빈승마저도 그 느낌에 거리감이 생겼다. 자신들이 깨끗하고 선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제 3자인 독자의 입장에서는 다 비슷하게 보였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딱 그 꼴이었다. 그런데 '과연 이들을 추악하게 느끼는 내가 깨끗한 사람인가?'라는 죄책감도 들었다.
책장을 덮고 나니 영화 '완벽한 타인'이 떠올랐다. 영화는 이 소설처럼 피비린내 나는 스토리는 아니었지만 인간이라면 숨기고 싶은 치부를 들춰낸다는 점이 비슷한 감정을 들게 했다. 완벽한 타인은 인생 영화라고 생각할 정도로 인상 깊었는데 비슷한 결로 꽤 오랫동안 머릿속에 각인이 될 듯하다. 솔직히 찝찝하면서도 더러운 느낌으로 책장을 덮었던 작품이었다. 어쩌면 이게 바로 인간들의 '거울 치료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