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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근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12월
평점 :




그런데 시신 옆에 기묘한 게 놓여 있었다. / p.18
이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일본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역시 재미 하나만 따지면 고민 없이 고를 수 있는 게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작품인 듯하다. 요즈음 나름 책이 술술 읽혀지는 시기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끔 도파민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었다. 갑자기 조미료 딱 하나가 떠오르는 시간. 그럴 때 잡으면 좋은 게 바로 이 작품이었다. 꽤 그동안 작가의 작품을 읽기는 했지만 개정판으로 새로운 작품이 발간되었다고 해서 이렇게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나라는 인물이다. 출산이나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교사의 공석이 생길 시에 임시 대체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대한민국으로 말하면 '비정규직' 또는 계약직' 교사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듯하다.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교사 대신 투입하게 된 나는 5학년 3반 담임을 맡는다. 그에게 넉살 좋게 말을 건네던 한 선생님이 살해되는 일을 시작으로 총 여섯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나는 이 사건들을 하나씩 해결한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작품은 가독성이 너무 좋다. 그래서 이 작품도 후루룩 읽을 수 있었다. 300 페이지가 안 되는 작품이었는데 두 시간에 모두 완독이 가능했다.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계약직 교사라는 개념이 대한민국에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어렵다는 생각도 없었다. 이야기에 몰입해 읽다 보니 어느 순간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있을 정도로 푹 빠졌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빠져들 정도로 그만큼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10X5+5+1'이라는 제목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담임 교사가 살해당한 학교의 교사로 부임했다. 다른 학교의 학생들과 다르게 나름 순응적인 태도를 보이는 학생들이었지만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임 담임 교사는 창문에서 떨어져 사망했는데 자살이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있다. 심지어 교사가 생전에 했던 행동들은 죽음을 앞둔 사람이 아니었다. 반 학생들의 반응을 보면서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는 생각에 나는 이 사건을 파헤치기로 한다.
이중적인 생각이 들어서 감명 깊었다. 결론은 학생들과 연관이 된 죽음이었는데 학생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더라도 너무 허무하고 안타까운 죽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영악하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인데 오히려 동심이 살아 있었기에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았나 싶은 생각에 연민이 들었다. 아마 성인이었으면 그렇게까지 극한까지 치닫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이를 떠나서 아이들의 요구는 누가 봐도 잔인하다고 느껴졌다. 여러모로 미묘하게 양가 감정이 들었다.
읽는 내내 과연 감정이 없는 비정근 교사가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아마 사람에 대한 감정이 없더라면 애초에 사건을 해결할 의지조차도 없이 업무적으로만 일을 했을 텐데 오지랖이 넓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주인공인 나는 사건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도 깔끔하게 처리하는 결말까지도 보인다. 이런 부분을 읽으면서 반어법인지 의문이 들었던 것과 동시에 표현하기 힘든 따뜻함을 느꼈던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