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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훔친 남자
양지윤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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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어떤 기막힌 사연이 있어 보였다. / p.11
이 책은 양지윤 작가님의 단편소설집이다. 예전에 <무생물 이야기>라는 작품을 읽은 기억이 있다. 줄거리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잊혀졌지만 작품이 주는 난해함만큼은 지금도 생생하다. 읽으면서 '대체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면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까지도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이 느낌이 낯설고 부정적인 것보다는 오히려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왔던 작품이어서 이번 신작도 그러한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집에는 총 여덟 작품이 실려 있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들이 겪는 사건들부터 보통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조금 넓다는 느낌을 받았다. 현실성과 허구성을 넘나드는 내용이었는데 이 부분들을 읽는 재미가 있었다. 새로움과 기괴함을 경험하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집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재미있다.
술술 읽혀졌던 작품집이었다. 아무래도 단편소설집이어서 한 편 읽고 일과를 보는 등 끊어서 읽기 좋았다. 특히, 약간 개인적인 기준에서는 기괴하거나 특이한 내용들이 있어서 리프레시 느낌으로 세네 번에 나누어서 읽었다. 300 페이지가 넘지 않으면서 술술 읽혀졌음에도 이틀 정도 걸렸다. 어렵거나 이해가 어렵다기보다는 언급했던 것처럼 기괴하고 당황스러운 내용이었기에 쉬면서 읽은 것이다.
개인적으로 <수조 속에 든 여자>라는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큰 수조에 여자가 있었다. 타인에 의해 결박이 되거나 억압이 된 것이 아닌 여자 스스로 수조에 갇힌 것이다. 길거리에서 이를 본 주인공 남자는 여자에게 시선을 빼앗긴다. 여자는 주인공에게 수조에 들어올 것을 권한다. 남자는 거부했지만 며칠이 지나 여자의 제안을 수락한다. 남 모르는 사이에 여자의 집으로 오게 된 수조, 그리고 수조 안에 있는 남자. 여자가 그 행동을 했던 이유와 이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극히 사적인 기준에 가장 난해했던 작품이었다. 여자가 자발적으로 수조에 갇힌 내용부터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남자를 수조 안에 스스로 갇히게 만든 이유가 더 황당하게 다가왔다. 그것을 순순히 따르는 남자의 태도도 솔직히 의문스러웠다. 물론, 매체로 심리적인 이유를 이용한 그루밍 범죄 소식을 접하기는 했지만 그것과 다르게 여자의 비상식적인 행동에 수긍하고, 여자에게 버려질 것을 걱정했고, 결국 결말까지 읽고 나니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면서도 세상 밖과 수조 안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은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많은 공감이 되었던 것이다.
<박수>라는 작품과 <진실의 끄트머리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이라는 작품이 인간의 밝은 면을 약간 언급했지만 작품들 전체가 어두우면서도 건조한 느낌을 받았다. 그 지점이 오히려 시원시원하게 와닿았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추악함이나 부조리함들을 이렇게 색다른 표현들로 쓰여진 작품이 오히려 매력적이었다. 서두에 언급했던 작품과 비슷한 감상이기는 하지만 이 작품이 훨씬 취향에 맞아서 더 좋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