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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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차 다니는 도로 같은 거라서 언젠가는 유턴이 나오게 돼. / p.34

이 책은 김금희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지금까지 작가님의 작품은 딱 한 권 읽었는데 느낌이 묘했다. 요즈음 유행하는 MBTI에서 감정형보다는 이성형이 앞선 사람으로서 섬세한 감정을 감당하기 조금 부담스럽다고 해야 될까. 물론, 조금씩 스며들기는 했지만 당시의 첫 느낌은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과하고 부담스러운 감성이었다. 주변에서는 좋은 평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작품도 읽었으면 좋겠다는 추천들이 많았지만 지극히 사적인 경험으로 그동안 작가님의 작품을 조금 멀리 했었다.

그러던 중 창비 출판사 북클럽 한정으로 신작 가제본 서평단 소식을 들었다. 북클럽 웰컴 키트 구성이 좋은 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입해 둔 상태에서 신작 장편소설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당시 읽었던 시기에는 이성을 앞세웠던 사람이었다면 지금은 그래도 날카로운 돌이 깎여 둥글게 변하듯 성향 자체도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을 보거나 책을 보고 우는 등 그래도 감성이 조금 올라온 상태라면 다른 느낌이 들지 않을까. 관심이 생겨 서평단에 신청했는데 운 좋게 선정이 되어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영두라는 인물이다. 국문학과를 나왔지만 건축사무소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창경궁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작성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석모도라는 곳에서 자랐는데 중학교 시절에 아버지의 권유로 창경궁 근처 하숙집으로 유학을 왔던 시기가 떠올라 초반에는 망설였다. 그러다 결국은 그 업무를 수락했다. 영두가 창경궁 대온실 수리 현장과 자신의 개인적인 과거 경험, 현재 영두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 대온실과 관련된 역사가 교차되면서 스토리가 흘러간다.

솔직하게 이 작품을 읽기가 조금 어려웠다. 시점이 너무 자주 바뀌었기 때문이다. 주요 시점은 영두로 흘러가지만 낙원하숙의 주인이었던 문자 할머니, 포도를 연구했던 일본 학자, 영두 친구 은혜의 딸이었던 산아 등 차마 설명하지 못한 인물들이 너무 많이 등장한다. 심지어 챕터에 따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든다는 점에서 혼란스러웠다. 하루를 꼬박 투자해서 완독했는데 이렇게 힘든 작품이었음에도 놓지 못한 것에서는 이야기에 큰 매력이 있었다.

문자 할머니의 과거, 대온실이라는 공간에서의 상황,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역사라는 측면에서 전반적으로 역사적인 내용에 대한 온전히 이해했다고 하기에는 스스로에게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동안 몰랐거나 외면했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다시 꺼내는 느낌이 들었다. 영두의 눈을 통해 비춰진 아릿한 역사들이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초반에 읽을 때에는 이렇게 역사적인 측면에서 이야기를 생각했었다.

그러다 중후반부에 이르러 대한민국의 역사 이야기보다는 영두가 가진 개인적인 서사에 더욱 마음이 쏠렸다. 영두는 아버지를 이십 대에 떠나보냈다. 가는 순간까지도 영두를 걱정했던 아버지였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들이 군데군데 드러나 있었다. 큰 그림에 몰입하다가 어느 순간 이렇게 작은 영두가 가진 기억의 파편들이 눈에 보일 때쯔음 내 마음도 그쪽으로 기울이게 되었다. 그렇게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조각들이 마음을 조금씩 찌르는 듯했다. 아마 영두 아버지의 모습에서 나의 아버지의 모습이, 그리워하는 영두의 모습에서 현재 나의 모습이 그려졌던 것 같다. 다른 독자들과 다르게 이 부분이 조금 더 강렬하고 인상적으로 남았다.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 인물의 개인 서사 모두 무겁고도 아프게 다가왔던 작품이었다. 결코 아픈 역사를 펼쳐서 보일 뿐만 아니라 이들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서로 상처를 보듬고 치유했던 부분도 인상 깊게 남았다.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살아간다는 어렴풋이 들었던 어느 이야기가 이 작품을 통해 뼈저리게 경험하게 되었다. 이 정도 되면 감성 지수가 조금은 높아진 어른이 된 걸까. 너무나 마음이 안 좋았지만 그만큼 앞으로 조금씩 다시 꺼내서 읽게 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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