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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동 랑데부 미술관
채기성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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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지금은 단 하나의 작품만 전시하는 공간이니까요. / p.14
뭐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하려는 경향이 있다. 독서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여름은 장르 문학으로 시작해 끝났던 것 같다. 그동안 그렇게 찾아서 읽은 적이 없었던 추리, 스릴러, 미스터리 장르의 작품에 푹 빠져서 살았다. 이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부니 자연스럽게 장르 문학보다는 다른 작품들에 눈길을 돌릴 시기가 왔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고 장르 문학에 아예 손을 뗀 건 아니어서 비중이 조금 줄어들 뿐 여전히 한동안 빠져 나오지는 않을 듯하다.
이 책은 채기성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눈을 돌린 장르가 바로 힐링이었다. 두근두근 긴장되는 마음으로 독서했었는데 조금 편안하게 읽을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종종 마음이 지치거나 힘들 때 큰힘이 되었던 게 힐링 장르의 문학이었다. 인생 책으로 뽑고 있는 작품 중 하나도 힐링 하면 떠오르는 소설이었고, 대한민국에서는 크게 히트를 쳤기에 뭔가 모르게 위안을 받고 싶었다. 그러다 선택한 책이 바로 이 작품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수호라는 인물이다. 꽤 오랜 시간동안 아나운서 지망생으로 살았다. 한 재단의 사내 아나운서를 지원했지만 그마저도 떨어졌다. 낙방으로 힘들 무렵 그 재단에서 의외의 연락이 온다. 재단 미술관의 행정직 근무 제의다. 초반에는 아나운서의 꿈을 버리지 못했기에 고민했지만 결국은 이를 수락해 부암동 랑데부 미술관에 근무한다. 자신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지만 뒷끝은 없다고 하는 실장님과 친절하고 능력 좋은 다미라는 인물과 함께 미술관을 일하는데 이 미술관은 우리가 아는 보통의 미술관과는 조금 콘셉트가 다르다.
전체적으로 술술 읽혀졌던 작품이었다. 수호처럼 나 역시도 미술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으로서 힐링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조금 걱정이 되었던 부분이다. 음악이 소재가 되는 작품에는 자연스럽게 음악 지식이 등장하고, SF 소설에는 과학적인 정보가 녹아들 수밖에 없기에 이 작품에 유일하게 걱정이 되었던 부분이었다. 그런데 아예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이해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미술 지식이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중후반부에 딱 하나의 단어가 등장하는데 그건 상식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정보여서 괜찮았다.
사연을 가진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 첫 번째 등장했던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참 인상적으로 남았다. 할아버지께서는 혼자 아파트에 거주하고 계시는데 윗집의 층간소음으로 힘들어하고 계신다. 윗집은 층간소음을 줄여 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 부분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미안함의 의미로 전달한 선물마저 다시 돌려 줄 정도로 화가 많이 나신 듯하다. 우연히 부암동 랑데부 미술관을 찾았고, 그곳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그려 달라는 의뢰를 맡긴다. 그 사연은 채택되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젊음을 잃었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이미 흘러버린 시간과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윗집의 층간소음의 문제와 합쳐져 더욱 심적으로 고통을 받고 계신 것이었다. 읽는 내내 사적인 이유로 서글픈 감정이 들었다.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는 이 작품의 할아버지처럼 젊음을 그리워할 수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울적했다. 아마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결된 개인적인 감정인 것 같은데 시간이 흘러 이 작품을 읽었다면 다른 사연들이 더욱 눈에 들어오지 않을까.
나라면 이 미술관에 어떤 작품을 의뢰했을까. 춤추는 것을 반대하는 아버지의 웃는 모습을 신청했던 딸과 비슷한 맥락으로 신청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의뢰했을 것 같다. 다른 독자들에게는 힐링의 감성을 선사할 스토리이지만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그리움을 주었던 작품이었다. 언제나 소설은 자신의 상황과 연결되어 보이는 것만 보이게 된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까지 서글프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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