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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
에이단 체임버스 지음, 고정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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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얼마나 즐겁고도 바쁜 세상에 살고 있는가. / p.201
이 책은 에이든 체임버스라는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사전에 정보를 얻기보다는 감으로 선택한 책이다. <썸머 85>라는 영화의 원작 소설이라고 하는데 아예 이름조차도 처음 듣는 영화이자 작품이었다. 단지, 제목과 내용을 보자마자 청소년의 위태롭고도 풋풋한 사랑 이야기가 담긴 영화 한 편이 떠올라 분위기가 비슷한 작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인이 된 지금 종종 그런 분위기를 그리워하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은 헨리라는 인물이다. 학업 연장과 취업을 두고 크게 고민하는 중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또는 좋아하는 일조차도 무엇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영문학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더욱 깊은 생각에 빠진다. 어느 날, 헨리가 친구의 요트를 가지고 놀던 중 뒤집히는 사건을 경험한다. 그때 배리라는 이름의 한 소년이 헨리를 구해 준다. 친구를 만나는 것조차도 운명을 믿던 헨리는 배리와 그 일을 계기로 친해진다. 두 사람은 누가 죽거든 무덤 앞에서 춤을 추자는 약속을 하게 되는데 배리가 죽자 헨리는 그의 말을 지키기 위해 무덤에서 춤을 추었다. 이상한 짓을 한다고 생각하는 경찰과 사회복지사는 헨리와 면담을 나눈다.
조금 더디게 읽혔던 작품이었다. 문체나 내용의 문제가 아닌 꼭꼭 씹으면서 읽어야 했기 때문이다. 보통 하나의 작품을 길면 일주일 안에 흐름을 타서 완독하는 편인데 이 작품은 다르게 읽었다. 퇴근 이후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을 고정적으로 만들어 이 주 정도에 전부 읽을 수 있었다. 문장이 너무 좋아서 일부러 읽는 속도를 늦춘 것도 있다. 이렇게 꽤 오랜 시간에 푹 빠져서 읽었다.
헨리의 시선으로 전개된 작품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헨리를 중심으로 감정에 몰입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크게 두 가지 감정을 기준으로 잡고 읽었다. 첫 번째는 '위태로움'이다. 취업과 학업의 갈림길, 배리를 향한 마음 등 헨리를 힘들게 만드는 상황들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전체적으로 차분한데 뭔가 묘하게 흔들리는 듯했다. 마치 파도가 오기 전의 폭풍전야의 느낌이었다. 현재에 대한 고민과 미래에 대한 걱정들이 사춘기 시기의 아이들처럼 보였는데 읽는 내내 나마저도 헨리처럼 불안정한 줄 위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사랑'이다. 작품에서 드러난 배리의 성향은 타인에게 다정다감하고, 무언가 나서서 도와 주는 스타일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헨리는 큰 질투를 느낀다. 그것도 몇 번 등장한다. 초중반까지는 헨리와 배리는 누가 봐도 친구 사이로 생각할 정도의 보통 관계처럼 보였고, 후반부에 두 사람이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 등장하기는 해도 전반적인 내용에서 두 사람의 풋풋하거나 격렬한 사랑의 느낌은 주지 않는다. 그저 헨리의 마음에서만 사랑의 파도가 덮치고 있는 중이었다. 청소년 시기에 겪을 법한 감정의 회오리라는 점에서 귀여운 짝사랑이자 첫사랑의 느낌이 들었다.
헨리를 보는 성인들은 대부분 비정상이라고 말한다. 배리의 어머니는 내 아들을 망친 놈, 경찰과 사회복지사는 조금 어딘가 정신적으로 나사가 빠진 아이, 아버지는 미래보다는 현실을 생각하는 아들. 그런데 과연 헨리가 나쁘고 비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시선을 조금만 돌려 본다면 내 주위에서 충분히 헨리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이들은 다 비정상일까. 청소년 시기에 경험할 수 있는 하나의 에피소드 정도로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성인이 된 지금은 내 자신이라는 존재가 점 하나의 작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헨리는 지나고 보면 뭐 대수롭지도 않은 일들에서 자신이 세상을 달관한 큰 인물처럼 생각하고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 또한 청소년이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하나가 내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크게 느껴졌던 기억. 지금은 그 큰일들마저도 사소하게 치부하게 된 어른이 되어서 읽는 내내 주인공 헨리가 너무도 부러웠던, 그 분위기가 그리웠던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