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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라 - 2024 제7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작
김아인 지음 / 허블 / 2024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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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아마 불안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 p.8
이 책은 김아인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단순하게 선택한 책이다. 딱히 이유를 찾지 않고 손에 잡히는대로 읽게 된 것인데 이유를 찾자면 처음 보는 작가님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듯하다. 새로운 작가는 그동안 앤솔로지 작품집이나 작가상 수상집에서 읽었는데 이렇게 단행본으로 나온 작품은 나름의 용기가 필요했다. 세상에 안 좋은 책은 없다고 하지만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시간 버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도전을 하기로 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웨이쉬안이라는 인물이다. 그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에피네프라는 이름의 전염병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AE라는 기업에서 인간의 뇌와 데이터를 보관한다. 웨이쉬안은 AE에서 데이터를 연결한 뇌와 척수를 제외한 나머지 신체들을 처리하는 일을 맡고 있다. 그에게는 페이라는 이름의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그녀는 AE의 세상을 부정적인 측면으로 바라본다. 페이가 에피네프에 감염되고, 웨이쉬안에게 가스미라는 AE 연구원이 접근해 비밀스러운 제안을 한다.
페이지 수가 짧은 작품이었는데 더디게 읽혀졌다. 초반에 AE라는 기업이 하는 일을 이해하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뇌와 척수를 남겨 데이터화시키고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는 곳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 이후로부터는 막막했다. 커다란 이야기의 맥락은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에서는 너무 어지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읽는 속도가 붙었다. 아마 대략 세 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소재 자체가 흥미로워 어려웠음에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부분이 인상적으로 남았다. 첫 번째는 등장인물들의 출신이다. 웨이쉬안은 싱가포르에서 살았던 인물로 등장한다. 그에게 접근한 가스미와 또 다른 인물은 일본인이다. 또한, 페이 역시도 홍콩에서 만났던 것으로 나오는데 흥미로웠다. 지금까지 한국 작가님의 작품에서는 주인공은 당연하게 한국 사람, 그리고 부수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이 등장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한국 사람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그 부분에서 이국적인 느낌을 많이 받아서 새롭게 그려졌다.
두 번째는 전염병과 사랑이다. 사실 세계를 휩쓴 많은 바이러스가 등장한 이후로 주요 소재로 읽었던 부분 중 하나가 전염병이 등장하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이 작품 역시도 에피네프라는 전염병이 등장하는데 한국과 외국 가릴 것 없이 SF 장르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소재여서 초반에는 기대가 없었다. 그런데 전염병이 도사리고 있는 판국에 사랑을 위해 위험한 일에 뛰어드는 인물의 이야기라는 점이 재미있었다. 전쟁 중에도 사랑한다는 모 드라마의 대사처럼 그렇게까지 특별한 일도 아닐 텐데 그게 취향에 맞았다. 무작정 불타오르는 애정이 아닌 사랑하는 이가 생각했던 본질을 가지고 뛰어드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조금 새롭게 느껴지지 않았나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라면 과감하게 그 일에 뛰어들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나의 대답은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성향이겠지만 사랑하는 마음과 별개로 나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본질을 파고드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웨이쉬안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뭔가 표현하기 조금 어려운 작품을 읽게 된 듯하다. 표현하고 싶은 문장이 많은데 이게 딱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느낌이 아쉬움보다는 만족에 대한 느낌에 더욱 가까워서 읽었던 시간조차도 만족스러웠던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