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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 ㅣ 박완서 아카이브 에디션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5월
평점 :

갈색 털이 무성한 손이 불쑥 내 코앞까지 뻗어와 멈추었다. / p.11
이 책은 박완서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학창시절 문학 지문에서 너무 익숙하게 봤던 작품이고, 현대 문학사에서 빠질 수 없는 분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돌이켜 보면 박완서 작가님의 에세이 한 권만 읽었을 뿐 다른 작품은 딱 그 정도 선까지만 읽었다. 딱히 작가님의 작품을 피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여러 상황들이 겹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이 작품은 박완서 작가님의 첫 등단 작품이다. 마흔 살에 공모전에서 당선된 소설. 관련 매체를 봤던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도 너무 자주 들었던 이야기여서 익숙했다. 이번에 새로운 옷을 입고 재출간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선택했다. 주위에서 꼭 읽었으면 좋겠다는 기대평까지 들은 터라 더욱 기대가 되었다.
소설의 배경은 6.25 전쟁 그 무렵이다. 주인공인 이경은 미군 PX에서 초상화를 의뢰받아 화가들에게 이를 전해 주는 일을 한다. 아버지와 두 오빠를 잃고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어머니는 두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삶을 포기해 버린 듯하다. 그러던 중 이경에게 새로운 화가인 옥희도라는 인물이 나타난다. 이경을 중심으로 하는 젊음과 청춘, 사랑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국 소설을 자주 읽는 편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대가라고 불리는 분들의 작품을 너무 오랜만에 접하다 보니 읽는 것이 더디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지금 사용하고 있는 현대어보다는 과거의 정서와 언어로 쓰여진 작품이다 보니 낯설게 다가온 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들은 많은 독서인들에게 여운과 감명을 주었던 만큼 나 역시도 이 부분이 너무 깊게 느껴졌다.
특히, 이경이 겪고 있는 상황들이 감정과 섞이면서 몰입되었다. 분명히 청춘이라고 불릴 수 있는 나이지만 전쟁 중이라는 시대상과 가족의 죽음이 드러나는 현실 앞에서 희망보다는 절망이 더욱 강렬하게 와닿았다. 이경의 이야기들이 마치 깊은 터널처럼 느껴졌다. 어떤 면에서는 허무감마저 들었다. 강렬한 마음이 이끌렸지만 그것마저도 행복한 사랑보다는 서로를 고통으로 이끌어가는 점이 읽는 독자인 나에게도 우울감으로 다가왔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조금 나이가 들어서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독서 내공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던 작품이었다. 어느 정도의 궤도에 올라 이 위대한 작품을 이해하는 날이 온다면 적어도 지금보다 풍부한 감상으로 더욱 깊이 남지 않을까. 당시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완전히 피부에 와닿고 싶었던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