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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 이름 붙이기 - 마음의 혼란을 언어의 질서로 꿰매는 감정 사전
존 케닉 지음, 황유원 옮김 / 윌북 / 2024년 5월
평점 :
품절



즉, 그리 낯설지 않을지도 모로는 존재로 보이는 순간이. / p.11
성향 자체가 그렇게까지 감정을 드러내는 편이 아니다 보니 꾹 삼키고 살아갈 때가 많다. 표현하고 싶어도 본능적으로 이를 누르게 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주위에서는 이러한 성향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대부분 무던하다고 말해 주시는 편이다. 마음에서는 파도가 심하게 치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게 좋은 점인지 아니면 안 좋은 점인지 그것조차도 잘 모르겠다.
특히, 슬픔이라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유독 어려워한다. 분노는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어떻게든 티가 나게끔 되어 있다 보니 금방 '아, 화가 많이 났구나.'라는 점을 인식하지만 슬픔은 그렇지 못하다. 눈물이라는 버튼이 눌리기는 해도 안경과 마스크로 충분히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남들이 있을 때에는 슬플 때 눈물 흘리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더욱 꾹 눌러 참는 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존 케닉이라는 작가의 에세이다. 요즈음 개인적으로 슬픈 일이 많다 보니 유독 끌리는 제목이어서 선택하게 되었다. 아무리 참는 것이 습관화된 사람, 성향 자체가 그런 사람이라고 해도 이렇게 슬픔이 온다면 표현하는 게 더욱 힘들다. 남들에게 그냥 단순하게 '슬프다.'라고 말하면 되겠지만 그럴 때마다 '조금이나마 적확한 언어로 나의 슬픔을 전달할 말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이 에세이가 그런 면에서 비슷한 결일 것 같아 선택했다.
존 케닉 작가님께서 '슬픔에 이름 붙이기' 프로젝트로 만든 신조어가 실린 책이다. 어떤 언어로는 길게 풀어서 설명해야 할, 또 어떤 언어로는 그런 문장으로도 표현될 수 없는 슬픔 감정이 실린 하나의 사전인 듯하다. 마치 시로 착각할 정도로 아름다운 언어들이 설명되어 있는데 책의 번역가이신 황유원 시인님께서는 바로 쭉 읽기보다는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사전처럼 찾아 읽기를 권하셨다고 한다.
읽는 것은 꽤 수월했다. 나눠서 읽기 좋게 구성이 되어 있다 보니 체감상으로는 금방 완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의 언어로 착각이 들 정도로 비유적이고 상상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아 더디게 읽혀졌다. 시를 자주 읽는 편이었다면 그 언어의 아름다움에 금방 이해가 될 수 있을 법도 한데 상상력이 제한된 현실주의자이기에 읽는 것이 조금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언어의 매력은 물씬 풍겨지는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마루 모리(MARU MORI)'라는 단어가 참 인상적이었다. 평범한 것들의 가슴 아픈 소박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삶 자체가,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소중하다고 느끼기는 하지만 너무나 일상적이기 때문에 이를 망각하고 살 때가 많다. 우선, 나조차도 항상 출근하는 길, 그리고 집, 매일 만나는 사람들 등이 소중하기는 해도 일에 치여서 살다 보면 이것조차도 무심하게 느껴진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참 많은 공감이 되었다. 내용에 등장하는 예시들도 크게 다르지 않고, 분명히 내가 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상실감이 와닿았다.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슬픔의 이야기가 다양하지만 아무래도 지극히 사적인 슬픔이 깔려 있다 보니 '상실'과 '죽음'이 관련된 단어들이 마음을 찌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분명히 완독은 했지만 마음이 아파 중간에 스스로 템포를 쉬기도 했었는데 나중에는 슬프지 않을 때가 된다면 다른 감정으로 다시금 재독하고 싶은 책이었다. 지금은 너무 몰입이 되어서 힘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