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가게 글월
백승연(스토리플러스) 지음 / 텍스티(TXTY)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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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나는요, 인생 자체가 길을 잘못 들었어요. / p.82

중학교 시절까지 M사와 W사의 잡지들은 나에게 하나의 빛과 같았다.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최애 아이돌의 인터뷰도, 깔깔 유머집에 나올 정도로 재미있는 이야기도 아닌 다양한 편지지이다. 어렸을 때에는 유독 편지 쓰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기에 아이돌 팬카페의 동지 또는 잡지에 실린 펜팔 구하는 글을 활용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편지를 꽤 오랫동안 주고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엇을 믿고 이름과 주소, 나이 등의 개인 정보를 오픈했는지 모르겠다. 너무 뭘 모르는 시기여서 용감하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해도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 친구들과 다시 펜팔을 주고받을 것 같다. 침대 아래 서랍에는 그 시절 주고받았던 편지들이 아직도 가득하다. 물론, 그 시기 이후로 지금까지 봉인이 되어 있는 판도라의 상자이지만 즐거운 추억만큼은 잊을 수 없다.

이 책은 백승연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5~20년 정도 전의 추억을 소환시킬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선택하게 되었다. 직장인이 된 현재에는 결재 서류에 서명할 때를 제외하고는 사적으로 그렇게까지 글씨를 쓸 일이 없는 게 조금 서글펐다. 만년필을 구매해 필사라도 해 볼 요량으로 시도는 하고 있지만 머리가 큰 만큼 펜을 쥐는 게 영 귀찮아진다. 그렇다 보니 다시 마음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필요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효영이라는 인물이다. 영화 관련 일을 준비하다가 포기했다. 대학 동기인 선호의 부름으로 편지 가게 글월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 그곳에서 부인을 그리워하는 교장 선생님, 선호의 후배이자 웹툰을 그리는 청년, 발랄한 우체국 여성 직원, 라디오를 진행하는 연예인 등 다양한 인물들이 글월을 찾아와 펜팔을 주고받는다. 그 안에서 이들은 서로의 아픈 부분을 위로받기도 하지만 효영은 사이가 좋지 않은 언니의 편지를 마주할 용기를 얻게 된다.

전반적으로 술술 읽혀졌던 작품이었다. 인물들의 사연들도 현실적이었고, 효영이 가지고 있는 서사 또한 그렇게까지 허무맹랑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거기에 편지 형식으로 다른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측면에서 흥미로웠다.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과거의 추억을 되새기기에 딱 좋은 작품이었다. 완독하기까지 두 시간 정도가 걸린 듯하다. 비슷한 세대의 독자들이라면, 펜팔을 알고 있다면, 더욱 몰입해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처음에는 효영이가 언니 효민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에 집중해서 읽게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장녀이기 때문에 효민의 입장에서 효영을 생각했었는데 열등감이었나 싶었다. 효민은 명문대를 나왔던 인재였고, 부모님의 기대를 받았던 딸이기도 했다. 비교적 관심을 덜 받았던 효영이기에 효민에 대한 애증이 크지 않았을까. 그러나 조금씩 읽을수록 효영이 가지고 있는 효민에 대한 감정은 열등감이라기보다는 연민이자 동정이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커 보이던 언니가 무너져가는 모습들이 동생의 입장으로 바라보기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교장 선생님의 이야기는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명필이라고 불릴 정도로 필체가 예술이었던 선생님께서는 펜팔을 위한 편지가 아닌 하늘에 있는 아내에게 편지를 적었다. 읽으면서 로맨티스트 면모가 느껴지는 반면, 아내를 향한 그리움이 편지에 구구절절 느껴져서 마음이 몽글몽글했다. 생전 장미를 가꾼 아내를 대신해 교장 선생님 손톱의 흙은 상상만 해도 묘한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실제로 있는 가게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읽으면서도 이런 펜팔 서비스가 있다면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바로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해 구경할 정도로 좋았다. 나의 이야기를 겉으로 꺼내거나 남들에게 전하는 일이 서툰 편인데 이번 기회로 조금은 드러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곧바로 펜팔 서비스를 이용하기에는 용기가 부족하지만 머지 않아 소설의 이야기가 나에게만큼은 현실로 다가오는 날이 얼른 다가왔으면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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