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 몫의 밤 1
마리아나 엔리케스 지음, 김정아 옮김 / 오렌지디 / 2024년 1월
평점 :

그녀는 지금껏 이 그림을, 이 달을, 이 개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 p.55
이 책은 마리아나 엔리케스라는 아르헨티나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공포 고딕 하면 떠오르는 외국 작가 이름이 몇 명 떠오르기는 하는데 지극히 사적인 취향과는 거리가 먼 스타일이어서 그동안 많이 읽지는 못했다. 그나마 분량이 짧은 단편소설집만 한두 권 정도 기억에 남을 정도이다. 종종 경험하지 않았던 장르의 작품들을 읽자는 생각으로 하나씩 접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작품이어서 선택하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후안과 가스파르 부자이다. 갑자기 사고로 부인이자 어머니인 로사리오가 세상을 떠나고 두 부자는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처음에는 여행하는 길에서 오지랖 넓고 무례한 식당 아주머니를 만나기도 하고, 어떻게든 긴 여행의 여정을 건너가고 있다. 그런데 후안은 평범한 인간이 아닌 어둠과 관련된 능력을 지닌 메디움이기도 한데, 이는 가스파르에게도 고스란히 유전이 된 듯하다. 메디움은 기사단에게 이용을 당하는 위치이기에 후안은 가스파르가 되물림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 능력을 최대한 숨기고자 한다.
전반적으로 너무 읽기 어려웠던 작품이었다. 아마 읽은 작품 중에서는 거의 다섯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읽는 것이 더디게 느껴졌다. 우선, 아르헨티나 문학 자체를 처음 경험하다 보니 용어나 문체가 조금 낯설게 다가왔다. 이는 번역의 문제라기보다는 작품에 드러난 문화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또한, 고딕 장르가 익숙하지 않아 조금이라도 무서운 내용이 등장한다면 책장을 덮고 잠시 환기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기에 그것 또한 조금 오래 걸리는 데 한몫했다. 그러나 내용 자체는 흥미로웠다.
어둠을 소환한다거나 기사단과의 대치 등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배경보다는 후안과 가스파르 사이에 느껴지는 부성애나 관계성에 더욱 집중해서 읽게 되었던 것 같다. 어느 부모가 되었든 자식들에게는 안 좋은 점들을 물려 주지 않으려는 생각은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그게 꼭 국적을 떠나 대한민국의 부모, 더 나아가 나의 부모만 하더라도 좋은 것만 물려 주고 싶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던 터라 누구보다 후안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반면, 후안의 심정은 누구보다 이해가 되었지만 그 결과로 드러나는 것은 오히려 가스파르에게 악영향을 미쳤다는 측면에서는 안타까웠다. 기사단은 이기적인 존재로 보여지기는 했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새로운 메디움을 발견해야 살아갈 수 있기에 어쩌면 가스파르를 찾는 게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후안은 먼저 메디움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으로서 막고 싶었을 것이다. 뭔가 묘하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어떻게 보면 작품 자체를 흥미나 재미로서 느껴야 하는 법인데 공포 고딕 장르조차도 현실적인 면을 찾아 공감하는 스스로가 조금 웃기게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온전히 흥미진진하게 상황 자체에 몰입했으면 또 다른 매력을 경험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스토리 자체는 너무 재미있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고딕 장르를 즐길 수 있는 내공이 없어 아쉬웠던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