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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결말 ㅣ 호시 신이치 쇼트-쇼트 시리즈 5
호시 신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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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로봇 계약 갱신했어. / p.14
이 책은 호시 신이치의 단편소설집이다. 예전에 쇼트쇼트 시리즈의 첫 작품집이었던 <완벽한 미인>을 우연히 읽게 된 기억이 있다. 그 작품들을 음식으로 표현하자면 '베트남 음식'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음식의 맛은 지워지고 없지만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이 잊혀지지 않아 종종 떠오르는 음식. 그게 나에게는 베트남 음식인데 처음 접했던 호시 신이치의 작품집이 그랬다.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읽었던 그 느낌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그 기분을 다시금 느끼고 싶었는데 같은 작품집을 읽기에는 익숙해서 그 느낌을 못 받을 것 같다. 그러다 찾게 된 게 쇼트쇼트 시리즈의 신작인 이 책이었다. 내용을 이해하거나 감정을 이입하기보다는 호시 신이치 작품집에 두드러지는 그 특이함을 다시금 경험해 보고 싶어서 선택했다. 아마 책을 펼치기 전에 기대하는 것도 작품성이나 내용보다는 그때 느꼈던 기분이지 않았을까.
작품집에는 총 열한 작품이 실려 있다. <완벽한 미인>에서는 오십 편 넘는 작품이 수록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잡는 느낌부터가 얇고 가벼웠다. 초단편 소설의 대가라는 수식어가 딱 어울리게 대부분의 작품들은 채 스무 페이지가 되지 않았으며, 전체 다 읽고 나서도 해설 제외 겨우 이백 페이지가 조금 넘었다. 시간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한두 편씩 읽어서 완독에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반면, 사실 내용 자체는 페이지 수와 다르게 금방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어떤 작품은 '이게 이렇게 끝난다고? 뭘 말하는 거지?'라고 물음표를 가득 띄웠고, 또 다른 작품은 '이렇게 짧게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대박인데?'라고 느낌표를 주기도 했다. 문장 부호를 이렇게까지 머릿속에서 TAB 키처럼 작동시킨 적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전작을 읽을 때보다 더욱 뭔가 혼란스러웠다. 이 기분은 익숙하면서도 또 색다르게 와닿았다.
개인적으로 <1년 동안>이라는 작품과 <내 자식을 위해서라면>이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1년 동안>은 첫 작품이다. 주인공은 하나의 로봇을 1년간 대여받게 된다. 처음에는 순종적이던 로봇이 갈수록 자신의 고집을 피우기 시작한다. 기간이 끝나면 반납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기기를 사용하고 있는 회사 동료에게도 비슷한 증상을 보이고 있었는데 그 동료는 이상하게 연장하겠다고 한다.
물음표와 느낌표 중 전자의 생각을 가지게 했던 작품이다. 가장 처음에 실렸기에 더욱 집중하면서 읽었는데 결론을 읽고 나니 이게 뭔가 싶었다. 내용 자체는 이해가 되는데 과연 작가는 무슨 의미를 전달하는 것인지 파악이 되지 않아 다시 돌아가 서너 번을 재독했는데 물음표만 늘어날 뿐 잘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표면적으로는 알겠다 하지만 아무래도 주인공과 같은 상황을 경험한 적이 없어서 로봇과 비유가 될 정도가 되나 싶어서 공감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묘한 물음표의 느낌이 싫지는 않았다.
<내 자식을 위해서라면>이라는 작품은 주인공으로 지역 내 유지가 등장한다. 나름 권력과 명예를 가지고 있는 인물로, 인품도 꽤나 훌륭했던 것 같다. 그런 주인공에게 이상한 이야기가 하나 들려온다. 아들이 범죄를 저질렀고, 이를 좋게 풀어가려면 정신병력이 유전인 것처럼 꾸며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들을 걱정한 주인공은 흔히 말하는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던 주변 사람들은 점차 그에게 등을 돌렸고, 기껏 쌓았던 명성은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주변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 아들에게 연락이 왔다.
반대로 후자의 생각을 가지게 했던 작품이다. 사실 처음에 주인공에게 어둠의 검은 손을 내밀었던, 눈에 보이지 않는 인물의 생각에는 크게 동의할 수 없었지만 결론적으로 본다면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부성애를 이렇게 짧은 소설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보였다. 가볍게 읽었을 때에는 약간 덤앤더머 부자가 아닐까 할 정도로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그 안에서 깊이 들여다 보니 자신이 오랜 시간 공을 들였던 사회 지위들을 내려놓을 정도로 아들을 생각했던 마음이 뭔가 뭉클하게 느껴졌다.
책을 덮고 나니 내용 전부 기억에 남는 작품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심지어 전작에 비해 확연하게 적은 작품 수를 가지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면서 호기심이 가득하게 읽었던 적은 아주 간만이었던 것 같다. 내용은 휘발되었더라도 물음표를 가지고 하나하나 의미를 찾아보려고 노력했던 것, 느낌표를 가지고 숨겨진 의미를 찾아 감탄했던 것이 꽤 나름대로 남는 것이 있었던 작품집이었다. 아마 전작에서 받았던 느낌을 더욱 더 구체화시킬 수 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