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종이 위의 직관주의자 - 단순하고 사소한 생각, 디자인
박찬휘 지음 / 싱긋 / 2023년 12월
평점 :

쓰고 그리는 것은 생각을 스스로 체험하는 일이다. / p.143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리면 그 누구도 어떤 것을 표현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사람을 그리면 졸라맨이라는 캐릭터가 있어서 그것으로 알아 볼 수 있는 정도. 그렇게 미적 감각이 제로에 가까운 나에게는 디자인이라는 분야는 너무나 멀고도 또 높은 존재이다. 다시 태어나도 절대로 할 수 없는 직종이지 않을까. 그만큼 디자인 자체를 어렵게 느끼는 사람 중 하나이다.
이 책은 박찬휘 작가님의 에세이다. 전작이었던 <딴생각>이라는 작품을 참 인상 깊게 읽었다. 직관보다는 현실을 생각하는 편이다 보니 어떠한 주제로부터 시작된 생각이 그물처럼 다른 무언가로 넘어갈 일이 많지 않은데 읽으면서 새로우면서도 신기했다. 거기에 부전자전이라는 단어가 절로 나오게 아드님의 상상력도 참 놀라웠던 기억이 있다. 이번 작품에 많은 기대가 되었다.
저자는 자동차 수석 디자이너로, 벤츠, 아우디 등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해외 차 브랜드의 디자이너를 해오셨던 분이다. 그렇게 멋진 디자이너의 영감은 어디에서 나올까. 그런데 거창할 것이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저자는 일상에서 소재를 얻으면서 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심지어 예술이 아니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전반적인 내용은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영감을 어디서 얻는지, 디자인에 대한 생각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참 어려울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디자인 분야에 일자무식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어떠한 지식조차도 없는 사람이다. 거기에 디자인이라는 게 타고난 미적 감각이 어울러진 예술의 영역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신이든 유전이든 그 어떤 것이든 선택을 받은 자들이 할 수 있는 직종이라고 해야 될까. 아무래도 개인적으로 할 수 없는 분야이기 때문에 더욱 신의 영역이라고 느껴진 듯하다.
그런데 읽을수록 뭔가 생각과 다르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은 시대의 영향을 받아야 하며, 대중의 시각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예술과 아예 거리를 둘 수는 없다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복잡하기보다는 단순함에서 그 해답을 찾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 저자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멀게만 느껴졌던 디자인이 조금은 가까워진 듯했다. 디자인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디자인을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상자라는 표현한 부분이 참 인상 깊게 와닿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람 자체도 디자인과 뭐가 다를까. 저자의 표현을 빌린다면 "우리는 모두 디자이너다."라는 이야기가 납득이 되지 않을까. 또한, 디자인이라는 일 자체에 대한 진지함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렇게 진지하게 임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을 하든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하고 있는 일과 맞물려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