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을 비는 마음
김혜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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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것이 자신을 그 모임에 끼워준 진짜 이유라는 것을 미애는 모르지 않았다. / p.16

비슷한 또래의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집에 대한 가치관이 변화되었던 것을 체감한다.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집을 장만하는 것이 살아가면서 가장 큰 목표이자 업이라고 느껴졌는데 나를 포함한 친구들은 그저 집이라고 하면 휴식처로 와닿는다. 집이라는 공간 자체가 주는 안정감이 있기는 하지만 기성 세대가 경제적인 안전을 원한다면 지금 세대는 정신적인 안전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이렇게 집 하나가 주는 세대의 생각들이 색다르게 느껴지면서도 참 신기하다.

이 책은 김혜진 작가님의 소설집이다. 전작이었던 <딸에 대하여>를 인상 깊게 읽었다. 사회적 약자인 노인을 케어하는 어머니가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딸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 안에서 느껴지는 이중성이 아직까지도 무겁게 와닿았던 작품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장편소설보다 단편소설집을 선호하는 독자로서 장편소설에 큰 영감을 주었던 작가님의 신작이 더욱 기대가 되어 읽게 되었다.

소설집에는 총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모두 집이 등장하고, 그 안에서 사람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과 관계를 다룬 이야기이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인지하지 못했는데 내내 익숙했던 내용들처럼 느껴져 확인해 보니 수록된 작품 중 일부는 이미 읽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새삼스럽게 다시 떠오르기도 하고, 새롭게 만나는 작품들은 흥미로웠다. 공통점이 있는 작품들이었지만 하나하나 개성이 넘쳐서 다른 매력들로 다가왔던 이야기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자전거와 세계>, <사랑하는 미래> 이렇게 두 작품이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자전거와 세계>에는 현지라는 이름의 여성이 등장한다. 현지에게 목표는 자전거 타기와 집 구매이다. 할머니께서는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아주 가벼운 접촉 사고임에도 퇴원할 생각이 없으신 듯하다. 거기에 회사 동료인 정민과 사이가 틀어진 이후 심리적으로 불안해 회사에서 업무 실수가 자주 발생한다. 현지는 지속적으로 자전거를 연습하고, 집 장만에 대한 목표를 상기시킨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과 다르게 자전거를 타는 실력은 늘지 않고, 정민과 대화를 시도하면 할수록 답답함만 커진다.

작품들 중에서 전작을 읽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현지의 이중적이면서도 자기중심적인 심리가 가장 눈에 띄었다. 현지는 어색한 관계를 풀고자 노력하는 자신을, 회사 내 동료와 힘들어하는 자신을, 할머니의 행동을 거부하는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한 주변 사람들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전거에게까지 해당한다. 읽는 내내 현지가 가지고 있는 이 감정들이 부정적으로 와닿았다. 그러면서도 현실적으로 돌아보면 나 역시도 그렇게 행동할 때가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에게 이중성을 느끼기도 했었다. 더 나아가 현지의 심정이 집의 부재로서 드러나는 불안정성으로 표현이 되지 않았나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랑하는 미래>의 주인공은 회사 상사의 한마디에 집에서만 보내려던 휴가 계획을 수정한다. 영어 배우기 모임에 참여해 마크라는 인물을 만난다. 마크는 외국인이었고, 그와 점점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사이가 깊어졌다. 이후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마크의 촬영을 계기로 주인공의 집에 마크가 들어오게 되었고, 같이 동거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는 언어 장벽이 있었지만 서로가 있는 미래를 꿈꾸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얼핏 보기에는 문화와 언어의 장애물을 이기는 한 커플의 사랑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이야기의 끝을 읽고 나니 집이라는 의미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공간에 집중이 되었다. 특히, 누군가를 집에 초대하지 않는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서 다른 작품의 등장 인물들보다 마크의 자리가 크게 와닿았을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의 심리와 생각들이 너무 크게 공감이 되었다. 직장생활로 힘든 날에는 행복했던 마크와의 대화마저도 귀찮게 느껴질 만큼 '내 공간'을 간절하게 원하게 되는 것조차 말이다.

전반적으로 인물들은 집이라는 물성으로 감정의 소용돌이, 인간 관계의 악화 등의 여러 사건들을 경험한다. 물론, 이들이 겪게 되는 일들의 절대적인 원인이 '집'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집이 주는 불안정에서 시작한다는 것 하나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집이 휴식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하지만 살아가면서 필요하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인정하게 되었던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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