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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생활자
황보름 지음 / 열림원 / 2023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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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단순하게 잘 살았다. / p.11
누구보다 새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보다는 기존에 있던 루틴을 지키는 일을 선호하는 사람으로서 단순함을 가장 우선적으로 뽑는 편이다. 일상생활에서는 최대한 움직이는 동선을 짧게 가지며, 휴일에는 집에서 거의 나오는 일이 없다. 생활 루틴 자체가 단순하게 흘러가기도 한다. 이를 보면서 누군가는 참 재미가 없게 산다면서 의문을 표하기도 하지만 만족하면서 살고 있다.
이 책은 황보름 작가님의 에세이이다. 꽤 오랜 시간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랐던 전작 소설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늦게 읽었는데 그 시기의 인생 소설로 뽑을 수 있을 정도로 너무 좋은 감정으로 남았다. 잔잔한 스토리에서 느껴지는 공감, 주인공 '영주'로부터 서점 주인으로서의 나름의 꿈을 이룬 듯한 기분, 누구나 고민은 가지고 살고 있다는 연대 등 다양한 감정으로 와닿았다. 작가님의 이야기를 읽고 싶어 선택하게 된 책이다.
작가님께서는 전업 작가로서 준비하셨지만 그것이 마음처럼 되지 않았고, 다시 직장인의 삶으로 가셨다. 그러다 우연히 썼던 소설 작품의 수상 소식을 듣게 되고 퇴사 후 현재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계시는 분이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과 가치관들이 에세이라는 책에 농축 있게 담겨져 있다.
전체적으로 공감이 많이 되었던 이야기이다. 읽으면서 요즈음 유행하는 MBTI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할 정도로 나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 듯했다. 상황 자체도 비슷했다는 점에서 너무나 술술 읽혀졌다. 에세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중간 내용마다 감정적으로 이입이 되기는 했지만 이렇게 유독 내용 자체가 나의 삶처럼 감정적으로 느껴졌던 책은 드물었다. 조금은 특별하게 와닿았던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지점이 더욱 인상 깊게 느껴졌다. 첫 번째는 독립이다. 작가님께서는 마흔이 넘어 처음으로 독립하셨다. 물론, 지금 내 나이와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자취를 하는 입장으로서 가장 큰 공감이 됐다. 특히, 혼자 살지만 청소를 하는 부분이나 독립된 공간을 가지게 되면서 자신을 살핀다는 부분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변에 독립한다고 했을 때 굶어 죽지 않을까 염려했었는데 정작 자취를 하고 나니 나름 규칙을 만들어 단순하고 깔끔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님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두 번째는 관계이다. 사람을 만나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 에너지를 얻기보다는 빼앗기는 타입이 아니신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막상 시간을 보내고 나면 기가 빠진다고 할까. 오히려 혼자 공원을 걷는 것이 더욱 익숙하신 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의 가지 치기로 남는 사람들만 있다는 내용이 너무나 와닿았다. 그래도 어렸을 때에는 대학생활과 직장생활로 많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술을 마셨지만 정작 삼십 대에 이르러 한정적인 관계에서 가끔 유지하는 정도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작가님과 통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무엇보다 혼술에 대한 내용은 가장 큰 공감이었다.
소설은 휴남동이라는 가상의 세계가 있을 것 같은 확신을 주었던 작품이라면 에세이는 마치 현재의 나의 마음을 들킨 것 같은 의심을 주었던 책이었다. 내내 비슷한 느낌을 남기는 듯하다는 생각에 그게 오히려 조심스러워질 정도로 통했다. 그런 지점에서 지금 가지고 있는 고민을 작가님께서 밟아오신 길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는 측면에서 용기를 얻었던 에세이이다.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