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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지거리
야마시타 히로카 지음, 박우주 옮김 / 달로와 / 2023년 10월
평점 :

할망구에게는 먹는 행위가 삶과 직결돼 있는 것이다. / p.22
이 책은 야마시타 히로카의 장편소설이다. 제목에 관심이 가서 선택하게 된 책이다. 한 인간이 겪은 부정적인 이야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어떤 내용인지 전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묘하게 제목에 시선이 머물렀다. 사실 그렇게까지 무기력한 스토리를 선호하지는 않는 편인데 책을 고르는 느낌을 믿기로 했다. 기대보다는 가볍게 읽을 생각이었다.
소설에는 할머니와 어머니인 키이짱, 손녀인 유메가 등장한다. 할머니는 치매 증상이 있는 고령의 노인이다. 키이짱은 할머니를 간병하고 있으며, 유메는 소설가를 꿈꾸고 있다. 유메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포기할 수 없는 꿈과 금전이 필요한 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많은 고민을 하는 모습들이 그려진다.
그 중에서도 할머니에 대한 애증이 잘 드러나 있는데 음식의 간을 심심하게 맞추는 키이짱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다거나 유메에게 아무렇지 않게 욕을 던지기도 한다. 남이 보기에는 민망한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 할머니의 모습과 할머니에게 화 한번 제대로 내지 않는 키이짱의 모습을 보는 유메는 답답함을 느낀다.
읽으면서 두 가지가 인상 깊었다. 첫 번째는 소설에 드러나는 독특한 관계이다. 유메의 할머니는 친할머니이며, 키이짱은 전 며느리인데 정리해서 본다면 키이짱과 유메의 아버지는 이미 이혼한 상태라는 것이다. 심지어 아버지는 재혼해서 다른 배우자와 함께 살고 있다. 서류상으로는 이미 남인데 키이짱은 전 남편의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가부장적인 사회를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는 현실적으로 있을 법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딸이자 손녀로서 가지는 애증이다. 유메에게 가족들의 모습은 그저 답답하게 만든다. 특히, 며느리의 희생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면서 아들은 고생하는 줄 아는 할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건강하실 때에는 친했던 할머니지만 지금은 성가신 존재가 되었다. 소설에 드러나는 유메는 누구보다 할머니를 미워하고 있지만 깊이 파고들어 생각하다 보니 이 또한 애정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순종적인 키이짱과 보기 싫은 할머니가 싫었더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고 독립을 했을 텐데 이렇게 내내 집에 붙어 있는 이유는 증오만큼 애정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머니 간병을 남이 된 전 부인에게 맡기는 아버지의 무책임과 남의 어머니를 성심껏 돌보고 있는 어머니의 미련함과 이를 지켜 보고 있는 딸의 마음이 읽는 내내 몰입이 되었던 작품이었다.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콩가루 집안이지만 현재 한국 사회를 돌려서 본다면 그렇게 소설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고구마처럼 속이 딱 막혀 사이다 생각이 간절했던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