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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하는 언니들 - 12명의 퀴어가 소개하는 제법 번듯한 미래, 김보미 인터뷰집
김보미 지음 / 디플롯 / 202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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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고자 한다면 항상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 p.22
많은 사람들의 인터뷰를 읽다 보면 꽤 인상 깊게 남는 내용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신화 멤버인 김동완 님의 이야기이다. 팬이 아니지만 꽤 독실한 크리스천 신자로도 잘 알고 있는 분인데 성소수자에 대한 질문이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중에 결혼해 태어날 자녀가 성소수자일 때 상처를 덜 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지한다는 답변을 하셨다. 당시에는 뒷통수를 내리치는 느낌이었으며, 지금까지도 종종 떠오른다.
사실 성소수자의 성향을 지지한다는 게 조금 안 맞기는 하지만 그동안 알고 있던 크리스천을 믿는 신자들과는 조금 다른 대답이어서 더욱 그랬다. 고등학교 때에는 미션 스쿨을 다녔고, 대학교 전공의 특성상 종교를 가지고 있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는데 보통 성소수자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많이 경험했다. 김동완 님의 답변은 퀴어에 대한 편견이 없는 나에게도 깊이 생각할 지점을 주었다.
이 책은 김보미 님의 인터뷰집이다. 열두 분의 이야기가 담긴 책인데 가장 눈에 띄는 두 분의 이름을 보고 선택하게 된 책이다. 종종 유튜브 영상으로 접했던 크리에이터 조송 님과 얼마 전 레즈비언 최초로 출산하셨던 김규진 님이었다. 사실 매체를 통해 소식을 접한 분들이기는 하지만 미처 알지 못한 그들이 펼쳐놓은 퀴어로서 세상 살아가는 법이 궁금했다.
인터뷰집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보았던 구성과는 조금 달랐다. 인터뷰이의 질문과 인터뷰어의 대답으로 실려 있을 것을 예상했는데 하나의 에세이처럼 느껴졌다. 나름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이런 구성의 책이어서 술술 읽힌 부분도 있었다. 거기에 잘 알지 못했던 저자의 이야기와 결합이 되다 보니 더욱 이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퀴어인 저자가 만난 다른 퀴어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꽤 흥미로웠다.
크게 두 가지 지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첫 번째는 저자의 이력이었다. 언급한 것처럼 저자의 정보가 전혀 없었다. 책 날개에 적혀 있는 내용을 보니 퀴어 최초로 대학교에서 학생회장으로 당선된 분이라고 한다. 인권 단체에서 성소수자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시는데 읽으면서 세상의 희망과 한계를 동시에 느꼈다. 아직까지 퀴어를 향한 부정적인 인식과 편견에 싸우고 있지만 성적 지향성이 높은 위치에 올라가는 것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분이 좋았다. 사실 이렇게 퀴어의 이야기가 실리는 책들이 하나씩 세상으로 나온다는 것도 하나의 큰 희망이지 않을까.
두 번째는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용 자체가 퀴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이를 가리고 본다면 다수의 이성애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직장 내에서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좋은 사람들과 공동체의 감정을 느끼기를 원한다. 이들 역시도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 행복을 느끼고 싶어하는 보통의 사람들이었다. 특히, 새로운 경험을 해 보는 것은 좋지만 마음을 잡지 못하면 그저 새로운 환경은 도피처일 뿐이라는 연희 님과 맞는 일을 찾아가야 한다는 춘식 님의 인터뷰 내용은 지금 가지고 있는 고민에서도 도움이 될 정도로 큰 위안이 되었다.
퀴어 인터뷰집이라고 해서 연배가 낮은 분들의 이야기가 실릴 것 같다는 예상이었지만 후반에 이를수록 삼십 대 중후반, 더 나아가 오십 년대에 태어난 분들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편견에 또 부끄러움을 느꼈다. 과거에는 아이들의 어머니이자 한 남자의 남편으로 살아왔던 분 명우형 님, 성소수자의 인권뿐만 아니라 더 낮은 곳에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손을 내미시는 최현숙 님까지 퀴어이지만 그전에 각각 한 명의 인간으로서 들려 준 가치관과 인생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그들과 연대할 수 있는 한 명의 앨라이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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