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널목의 유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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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특정한 건널목에 여러 사람이 몇 번씩이나 침입하는가? / p.23

이 책은 다카노 가즈아키의 장편소설이다. 주변에서 '제노사이드'라는 작품이 꽤 재미있다는 평을 자주 들었다. 올해 그 책을 구매해서 읽을 시기를 고민하던 중에 신작 소식을 듣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눈이 향하게 되어 선택했다. 전체적으로 긍정적으로 들었던 작가의 작품이기에 설렘과 기대감이 들었다.

소설은 시모키타자와 3호 건널목에서 벌어지는 불가사의한 현상으로부터 시작한다. 갑자기 한 사람이 뛰어드는 듯한 모습을 보고, 기관사들이 긴급 정지를 하게 되는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막상 보면 그곳에서는 실체가 없었다. 심지어 그 당시에는 철로에 뛰어들어 목숨을 잃는 사람들마저도 없었다. 그야말로 기이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은 마쓰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마쓰다는 과거 신문사에서 유능한 기자였지만 현재는 여성 잡지사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2년 전에 아내를 잃고, 그리워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신문과 잡지의 차이가 크다 보니 재계약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큰 실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편집장의 명령으로 심령 특집 기사를 맡게 되는데 대부분은 허무하기 짝이 없는 제보였는데 그 중에서 하나가 마쓰다의 눈길을 끌었다.

그 제보가 바로 시모키타자와 3호 건널목의 유령 이야기이다. 초반에는 사진 기술을 이용한 허구 제보이지 않을까 싶었지만 제보자들이 두 명이나 되었으며, 기술로 조작하기에는 그렇게까지 능력이 없는 사람인 듯했다. 결국 마쓰다는 이 제보를 토대로 건널목에 등장하는 유령 사건을 찾아나서기로 하는데 하나의 살인 사건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마쓰다는 살인 사건에 조금씩 가까워진다.

역시 주변의 추천만큼이나 몰입감이 장난 아니었던 작품이었다. 공간적 배경부터 등장하는 인물까지 지금까지 보았던 일본 작품들과 다르게 단순하다고 느껴졌다. 보통 이름을 외우지 못해 큰 난관에 부딪힐 때가 많았는데 마쓰다와 주변 인물들 이름이 금방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이해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상상력이 부족해도 바로 상상해서 장면화시킬 정도로 너무 쉽게 읽혀졌다. 그 부분이 가장 좋았다.

개인적으로 감정과 현실 사이에서 가장 중심을 잘 잡을 수 있는 작품이어서 인상적이었다. 마쓰다가 가진 아내를 향한 그리움이나 중년 남성이 가지고 있는 무력감,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안정함을 너무나 잘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울컥했다. 사실 마쓰다가 그렇게까지 직업 정신이 투철한 인물은 아닌 듯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건널목의 유령에 목숨과 돈을 버리면서까지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정의감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하게 심령 기사만 써도 될 사람이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기 위해 노력하는 그 마음이 너무나 절실하게 와닿았다.

반면, 뉴스 사회 면에 자주 등장하는 정제계와 어두운 곳과의 유착 관계를 주제로 파헤친다는 점에서 현실감이 와닿았다. 사회에 권위 있는 자가 그래도 양심이나 교양, 상식까지도 갖췄으면 좋았을 텐데 한 마리의 짐승처럼 본능에 매달려 자신의 명성을 그르치는 꼴을 보고 있자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는 몇 가지 사건들이 스쳐서 지나가기도 했다. 마쓰다의 어깨를 펴주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적어도 저런 인간들보다는 정의로우면서도 상식이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대를 하면서 읽었던 작품인데 그 예상을 뛰어넘는 만족을 주어서 좋았다. 취향으로 사회파 미스터리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인간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감성까지 건드린 이야기라는 점에서 가산점을 주고 싶다. 독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작가와 작품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다시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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