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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숫자
스콧 셰퍼드 지음, 유혜인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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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사랑에 빠졌다. / p.10
요즈음 자주 읽는 단어 중 하나를 고르자면 '살인'이지 않을까. 직업적으로 그 부류를 만날 수 없는 환경일 뿐만 아니라 상식적으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인간 중 하나인데 왜 이렇게 시선에 들어오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읽고 있는 작품의 장르 때문이지 않을까. 여름 하면 추리, 스릴러, 미스터리 장르가 떠오르는 계절의 특성상 꽤 많은 양의 장르 소설을 읽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 보니 단골 소재인 '살인'을 자주 읽게 되면서 그 일을 저지르는 부류들을 시각적으로 많이 만나게 되는 시기이다. 그래도 작년 여름까지는 볼 일이 많지 않았는데 올해 여름은 유독 자주 떠올랐고, 그만큼 자주 읽었다. 아마 일 년에 읽을 해당 장르의 작품을 삼 개월 안에 읽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스콧 셰퍼드의 장편소설이다. 역시 추리, 스릴러, 미스터리 장르의 작품이다. 계절적인 영향으로 고르게 된 신작인데 기대가 되었다. 거기에 형사와 살인자 조합은 거의 취향 저격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동안 읽었던 작품들 중에 자주 등장했고, 그만큼 만족스러웠기에 이번에도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연말에 퇴직을 앞둔 그랜트 형사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살인 사건으로 본 듯하지만 갈수록 연쇄적으로 사건이 벌어진다. 그것도 이마에 로마 숫자로 살인 횟수를 적는 범인의 시그니처를 보니 이것은 보통 사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도저히 답이 안 나오던 상황에서 동생의 조언에 방향을 찾는다. 그러던 중 미국에서부터 똑같은 시그니처를 가진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랜트 형사는 바로 미국으로 날아갔다. 미국과 영국을 넘나들면서 연쇄 살인 사건을 풀어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대감이 너무 컸던 작품이지만 오백 페이지가 약간 못되는 분량이다 보니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혹시나 중반에 이르러 늘어지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었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너무 흥미롭게 읽었다. 그랜트 형사의 분투와 함께 미국 형사와의 공조, 그랜트 형사의 가정사 이야기 등 눈을 뗄 수 없어서 꽤 오랜 시간을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소재 자체가 참 인상적이었다. 살인자는 성경 구약에 등장하는 십계명에 따라 저지른다. 무교인 입장에서 성경 구약을 알지는 못하지만 순서대로 그에 맞는 사람을 물색해 살인한다는 게 새롭게 보였다. 어떻게 보면 읽는 독자로 하여금 개연성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의문이 들지 않을 정도로 너무 딱딱 맞았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기준에서는 납득이 가능했다. 그랜트 형사의 가정사와 살인 사건이 연결될 때의 소름은 이루 말할 것이 없었다.
보통 사회파나 현실적인 문제를 결합한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편인데 이렇게 전통적인 추리 장르의 작품치고는 드물게 만족스러웠다. 아마 지극히 사적인 순위로는 추리 장르로 가장 상위권에 랭크가 되지 않을까. 그만큼 푹 빠져서 읽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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