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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쓰레기의 처리 방법
이희진 지음 / 씨엘비북스(CLB BOOKS) / 2023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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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은 그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 / p.22
이 책은 이희진 작가님의 소설집이다. 소재 자체가 흥미로워서 선택하게 된 책이다. 그동안 전염병이나 자연재해로 벌어지는 디스토피아 작품들은 많이 읽었지만 인간이 플라스틱병에 걸려 벌어지게 되는 이야기는 처음 보는 듯했다. 흔히 개념이나 상식이 없는 이들을 '인간쓰레기'라는 호칭을 붙이기도 하는데 플라스틱병에 걸린 인간이야말로 다른 의미의 인간쓰레기는 아닐까. 작가님의 새로운 상상력에 기대감을 가졌다.
소설에는 크게 네 사람이 등장한다. 각각 다른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주제는 하나다. 플라스틱병에 걸린 사람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첫 번째 작품에 등장하는 나영에게는 연인이, 두 번째 작품에 등장하는 수진은 시어머니가, 세 번째 작품에 등장하는 수현이와 네 번째 작품에 등장하는 태주는 직업적으로 이들을 만난다. 각자 플라스틱병에 걸린 누군가 또는 플라스틱병과 연관된 어떠한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작품인 <악취>와 세 번째 작품인 <역 피그말리온>이 가장 인상적으로 남았다. 우선, 플라스틱병으로 사망한 인간의 경우에는 매장한다거나 소각이 불가능하고, 정부에게 맡길 수 있다. <악취>에서는 수진의 시어머니가 플라스틱병에 걸렸고, 시어머니 시체를 집으로 들이게 된다. 마땅한 공간을 찾던 중 부부가 수면을 취하는 안방 사이의 틈에 돌돌 말아 두기로 결정한다. 무색무취의 플라스틱병 시체가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이 가족과 생활하게 되는데 어느 날, 딸이 수진을 보면서 악취에 대한 말을 꺼낸다. 그동안 인식하지 않았던 수진은 딸의 말에 광적으로 악취를 맡게 된다.
이 작품을 딱 한마디로 정의를 내리자면 "효도는 셀프"라는 단어였다. 소설에서 남편은 그야말로 효심 지극한 아들로 보이고 싶지만 가족에게는 무책임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어떻게 어머니를 그렇게 맡길 수 있겠냐고 하지만 결론적으로 전적으로 책임은 며느리인 수진이 지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안방에 두고 자신만 소파로 나와 취침하려는 모습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역 피그말리온>에 등장하는 수현은 불법적으로 플라스틱병에 걸린 작은 생물들을 수집하고 또 이를 처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어느 날, 연이라는 이름의 한 여성이 딸을 플라스틱병에 걸리게 해 달라는 의뢰를 한다.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고 있기는 하지만 인간까지는 수집하지 않는 수현은 갈등했다. 그러나 묘하게 신경이 쓰이는 연에게 이끌려 이를 결국에는 수락한다. 그런데 연의 의뢰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 작품을 읽고 수현과 연의 성별을 착각했다. 이는 어디까지나 사회에서 느끼는 편견으로부터 느꼈던 점이었는데 그만큼 수현이 가지고 있는 연에 대한 감정이 너무나 잘 와닿았기 때문이다. 연이 가진 모성애로부터 시작되었지만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연에게 빠져드는 수현의 사랑에 집중이 되었다. 결말마저도 그렇게 인지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딸을 플라스틱으로 박제한다는 게 상식적으로는 도통 이해가 안 되기는 하지만 연의 입장에서는 그 누구보다 감정적이고 인간적으로 마음이 동했던 이야기였다.
현실에 상상력을 한 스푼 얹었다는 점에서 너무 취향에 잘 맞는 작품들이었다. 그러면서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오만 군상들을 작품을 통해서 보게 되니 어느 면에서는 화가 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말이다. 가볍게 읽혀지기는 했지만 그만큼 마음에는 남는 것이 많았던 소설집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