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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
황모과 지음 / 래빗홀 / 2023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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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끝내고 싶었다. / p.7
한때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유행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 떠오르는 것만 해도 과거 조선시대에서 현대로 넘어온 이야기가 있었고, 오히려 미래에서 현재로 넘어온 이야기가 있었다. 어느 순간이든 현실적인 면을 두고 있는 나에게는 그렇게 큰 흥미가 생기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 책은 황모과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타임슬립이 주제라는 점보다는 과거의 아픈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선택하게 된 책이다. 드라마로 만들어진 작품부터 시작해 그런 류의 작품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지금까지 읽었을 때에도 안 좋은 느낌보다는 좋은 인상을 받았기에 이 소설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거기에 특정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니 더욱 관심이 갔다.
소설에는 민호와 다카야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지하통로를 지나 1923 간토 카타콤베라는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것은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곳이며, 두 사람은 프로젝트로 만난 사이이다. 진상규명위원회에서 근무하는 민호와 우익 재단의 지원을 받아 참여하게 된 다카야는 싱크로놀로지 채널에서 과거를 관찰한다.
또 다른 시점에서는 평세와 달출이라는 인물이 있다. 평세는 사람의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며, 달출은 천한 신분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둘은 노동자로서 살아가면서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온갖 차별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것도 모자라 모든 악행의 원인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민호가 등장이 이 두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 민호와 다카야, 평세와 달출이라는 인물을 통해 당시 과거의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생각보다 얇은 페이지 수이기는 하지만 소재부터 장르까지 전부 어려움으로 다가왔던 작품이었다. 관동대지진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한국사 시간에 배웠지만 그렇게까지 깊이 보게 될 일이 없었다. 또한, sf라는 장르 자체가 다른 장르에 비해 조금 어렵게 다가오다 보니 초반에는 이야기를 이해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인물들의 감정이 온전히 와닿게 되었던 것은 30% 정도 읽은 이후였다.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한 가지 생각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것은 약자들에 대한 차별이다. 평세와 달출이 살고 있는 곳에서 두 사람은 조선인이라는 약자였다. 그밖에도 우리가 흔히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임산부와 장애인 등 다양한 약자들이 등장한다. 넓은 차원에서 보면 조선인을 향한 무자비한 폭력과 무시, 차별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같은 일본인이어도 당시 조선인과 같은 취급을 받으면서 오롯이 받아내야만 하는 약자들이 있다는 게 새롭게 다가왔다.
내내 묵직하게 다가왔던 작품이었으며, 그동안 가지고 있던 또 하나의 편견을 깨게 해 주었다. 관동대지진을 비롯해 일본에게 일어나는 안 좋은 일들을 조선인이 벌이는 일들로 몰아가는 상황들 자체가 불편한 진실이었지만 한국인과 일본인,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이 아닌 각각 하나의 인간으로서 생각할 수 있었던 계기를 만들었던 작품이어서 좋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